김도진 행장은 기업은행의 강점과 약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인수합병(M&A) 없이 자체적으로 성장하면서 형성된 순혈주의 문화로 인해 조직 단합은 잘되지만 개방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도진 행장은 기업은행의 강점과 약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인수합병(M&A) 없이 자체적으로 성장하면서 형성된 순혈주의 문화로 인해 조직 단합은 잘되지만 개방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지난해 12월28일 취임한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스스로를 ‘강서구 토박이’라 부른다. 1985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서울 등촌동지점으로 첫 발령을 받으면서 터를 잡은 강서구 생활이 벌써 30년 이상이다. 집이 화곡동인 그는 매일 오전 7시 전에 출근해 책상에 놓인 한문 구절을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 사람이 깊은 사려가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생긴다는 뜻이다.기업은행은 올해 중소기업 대출 등을 위한 자금 공급 규모를 43조5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중소기업 지원과 육성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1조5000억원 늘렸다.김 행장은 그러나 “중소기업 육성의 책임을 다하겠지만, 모두 살리려고 하면 정작 살려야 할 중소기업을 못 살린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지원은 하지 않을 계획이다. 선별 지원을 통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이뤄지게 해야 건강한 중소기업 생태계가 조성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은행장에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외부 인사가 은행장이 됐다면 업무를 파악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취임한 뒤 바로 필요한 조직 개편과 인사를 할 수 있었지요. ‘낙하산이 아니라 내부 출신이 행장을 계속 맡으면서 별로 바뀌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지만, 저까지 세 번 연속으로 내부 인사가 행장이 되면서 임직원의 주인의식과 사기가 크게 높아졌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많습니다.”

▷시중은행에 비해 행장 선임 과정이 다소 느슨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 신한금융 회장과 신한은행장, 우리은행장 선임 절차를 보면 개별 프레젠테이션과 심층면접 등의 과정이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기업은행은 민영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똑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어요. 기업은행장을 추천하는 금융위원회가 여러 경로를 통해 충분히 검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저를 포함해 여러분이 하마평에 언급된 것을 보면 경쟁도 분명히 있습니다.”

▷기업은행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인 게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순혈주의입니다. 기업은행은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인수합병(M&A) 없이 자체적으로 성장했어요. 이 때문에 조직 단합이 잘되지만 개방적이지는 않습니다. 또 하나는 중소기업 금융에 특화돼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중소기업의 3분의 1 이상이 기업은행과 거래하고 중소기업 대출 시장점유율도 작년 말 기준 22.6%로 압도적 1위예요. 그러나 중소기업 금융에 비해 소매금융 등 다른 영역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 등에서 불리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기업은행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업은행은 상장사인 만큼 이익을 많이 내야 하지만, 설립 목적인 중소기업 육성 및 보호 역할도 등한시할 수 없습니다. 법적으로 여신의 70% 이상을 중소기업에 하도록 정해져 있어요. 수익성 확보와 중소기업 지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적정한 이익을 내야만 지속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을 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현장에서 느낀 중소기업의 체감 경기는 어떤가요.

“전체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기업이 더 많아 보입니다. 과거 경제위기 상황과 단순히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최근 많은 기업인이 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합니다. 물론 해외시장을 뚫어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있지요.”
[월요인터뷰] 김도진 기업은행장 "중소기업 퍼주기 지원 안 한다…살려야 할 기업만 도울 것"
▷중소기업들이 정책자금에 너무 의존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중소기업 퍼주기 지원과 이로 인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만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에요. 중소기업 지원이 ‘다 살리자’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기술력과 생산성 등이 뛰어난 중소기업을 가려서 지원해야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정책자금에만 의존하는 경쟁력 없는 기업이 아니라면, 어려울 때 지원을 더 늘려야 합니다. 잠재력이 큰 기업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서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지요.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 여신을 중단하거나 줄였지만 기업은행은 오히려 더 늘렸습니다. 나중에 보니 힘들 때 지원한 기업들의 연체율이 평상시보다 높지 않았습니다.”

▷기업은행이 진행하는 영화 등 콘텐츠 투자는 중소기업 지원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닙니까.

“영화 투자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가 많은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영화산업을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영세 소기업이 많이 자리잡고 있어요.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차원에서도 영화 투자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여신 규모에 비하면 크진 않지만 은행의 수익을 다변화하는 측면도 있고요. 올해부터 2019년까지 영화, 드라마, 공연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지난 3년간 지원금액 7500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난 규모죠.”

▷취임 후 줄곧 수익원 다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자수익에 너무 의존하는 게 사실이에요. 외환, 투자은행(IB) 등 비이자 이익 비중을 현재 13% 수준에서 20%까지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해외 진출도 확대할 계획이고요. 2025년에는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은행 전체 이익의 20%를 차지할 겁니다.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동남아 유망 지역은 적극적인 M&A를 통해 진출한다는 구상도 하고 있어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은행 두 곳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베트남 지점은 현지법인으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진출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중은행들이 먼저 진출한 지역인데요.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지역에서 소매금융을 통해 수익을 올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지에 진출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기업은행이 동남아시아 진출을 추진하는 이유 역시 한국 기업의 글로벌 생산기지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주회사 전환 얘기가 가끔 나옵니다.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한 뒤 지주사 전환 질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연구용역은 말 그대로 기업은행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고, 그 길이 반드시 지주사체제라고 할 수는 없어요. 지주사는 대주주인 정부 의견과 관련 제도 및 법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업은행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지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드릴 수 있습니다.”

▷은행과 증권 협업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비이자 수익을 늘리기 위해선 자회사와의 협업이 필수적입니다. IBK투자증권과 함께 서울 한남동, 강남, 반포자이와 경기 시화공단에 복합점포 네 곳을 개설했는데 부산 대구 등 지방 대도시로 확대할 계획이에요. IBK투자증권이 입점 가능한 PB센터를 복합점포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직원 사기 진작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기업은행이 강하고 탄탄한 은행이 되려면 우선 일할 맛 나는 직장이 돼야 합니다. 조직원이 의욕이 없는데 어떻게 조직이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시범 운영한 유연근무제 전면 도입을 검토 중이에요. 또 3700여명에 달하는 무기계약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도 가능한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 김도진 행장은
화통한 성격에 '도진스키'란 별명…SNS로 소통 나서


김도진 행장의 별명은 ‘도진스키’다. 큰 체격에다 화통한 성격, 강한 추진력이 왠지 러시아 사람을 연상케한다는 이유에서다. 운동을 즐기며 짬이 나면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기도 한다.

직원을 강하게 몰아치면서도 인간적인 소통능력이 뛰어나 따르는 후배가 많다. 뒤에서 꼼꼼하게 업무를 챙기는 스타일이다. 부서장 시절부터 직원들과 격의 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즐겼고, 부행장 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자신의 일상적인 소식을 올리고 댓글 하나하나에 일일이 답하기도 했다.

1985년 기업은행에 입행한 뒤 일선 영업점을 거쳐 본점 카드마케팅부장, 전략기획부장, 기업금융센터장 등을 두루 경험했다. 경영전략그룹담당 부행장을 맡은 뒤 ‘전략통’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1978년 대구 대륜고 졸업
△1981년 단국대 경제학과 졸업
△1985년 기업은행 입행
△2005년 인천 원당지점장
△2009년 카드마케팅부장
△2010년 전략기획부장
△2012년 남중지역본부장
△2013년 남부지역본부장
△2014년 경영전략그룹장(부행장)
△2016년 제25대 기업은행장

서욱진/이현일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