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와 업체들이 국제 관계나 상업적 거래 등에서 수난을 당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백신을 만드는 외국의 한 다국적 기업은 백신을 보내달라는 한국정부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열흘째 재고량 보유 여부에 대해서도 회신을 하지 않았다.

외국의 한 유명 언론사는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했으며,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추진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무차별적 보복을 하고 있다.

◇ 한국 방역당국, 다국적기업에 수난당해
농림축산식품부는 경기도 연천 젖소 농가에서 A형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 8일 다국적 기업인 메리알사(社)에 백신을 다급하게 요청했다.

A형 백신이 당장 필요했으나 보유물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A형 구제역이 돼지로 번지면 재앙 수준의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국 당국은 발을 동동 굴렀다.

전국에 있는 돼지는 무려 1천100만마리에 달하며 전염력이 소보다 훨신 강하다.

한국 정부는 메리알 한국지사를 통해 재고 여부를 타진해 보기도 하고,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서도 메리알 본사에 접촉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리알사는 계속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재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뚜렷한 회신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농림부가 굴욕적인 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한 국내 백신 개발업체 임원은 "거대 백신회사인 메리알사의 물량 수급 정책상 한국 정도의 나라는 우선순위가 그렇게 높지 않을 수 있다"며 "설령 보유중인 재고가 있다고 하더라도 더 긴급한 상황에 쓰기 위해 한국에 넘겨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임원은 "이런 한국의 상황은 '백신 종속국'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설움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국산 구제역 백신을 개발해 직접 생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메리알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메리알 본사는 한국을 매우 중요한 시장으로 보고 있으며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백신 수출 물량 재조정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상황"이라며 "조만간 가시적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외국 언론사가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에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했다.

이 신문은 아시아에서 환율 조작을 하는 국가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한국, 대만, 싱가포르라고 보도했다.

중국과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데 비해 한국은 8%에 육박한다는 것은 환율을 조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이 신문사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유가 하락에 따른 측면이 크며, 원화의 실질 가치는 계속 고평가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환율 조작이라면 오히려 미국, 일본, 중국 등이 훨씬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 나라는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등을 통해 자국의 화폐가치를 조정해왔기 때문이다.

FT는 2015년 7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신문(닛케이, 닛케이신문)에 인수됐다.

이에 따라 이 신문사의 이번 보도는 미국의 관심사를 일본에서 한국 등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정상회담을 열흘 앞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제약사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면서 "이들 국가는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 중국, 전방위적 사드 보복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계획에 대해 중국의 보복은 예상보다 거세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화장품, 공기청정기, 양변기 등 다양한 품목의 제조업과 관광을 비롯한 서비스업, 문화 공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0월에 '저가관광 근절'을 이유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수를 20% 줄이라는 구두 지침을 내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실제로 남방항공과 동방항공 등 중국 국적 항공사들도 돌연 한국행 전세기 운항 신청을 철회하기도 했다.

또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이 지난달초에 발표한 불합격 화장품 명단에는 애경 등 한국 브랜드의 화장품 19개 품목이 포함됐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드 보복'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업체들은 중국 태도가 '사드 사태' 이전과 같지 않다고 전하고 있다.

질검총국은 지난해 말에도 43개 한국산 비데 양변기에 대해 품질 불량을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LG전자·신일 등 한국기업 공기청정기의 수입도 막았다.

롯데가 중국 선양에 짓는 '롯데월드 선양'의 공사가 중단된 것도 중국의 보복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롯데월드 선양 공사 중단 배경에 대한 '사드 보복설'은 지난해 11월 29일 중국에 진출한 모든 롯데 계열사 사업장이 세무조사와 소방·위생·안전 점검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조사·점검 대상에는 롯데월드 선양 건설 현장도 포함됐다.

롯데측은 수개월간 공사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추운 날씨 탓이며, 중국 당국의 규제와 직접적 인과 관계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악가 조수미, 피아니스트 백건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의 방중 공연까지 잇따라 취소돼 사드 배치와 관계가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중국 정부는 관련성을 부인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열 신호경 기자 keunyoung@yna.co.kr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