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를 이기는 도쿠가와 리더십(7) 강한 자가 천하를 차지한다
실전 경험이 많은 철저한 경험주의자 이에야스의 승리


난세를 이기는 도쿠가와 리더십(7) 강한 자가 천하를 차지한다

100여년간 지속됐던 전국시대의 승자를 결정짓는 전투가 1600년 벌어졌다. 몇년 전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일본 통일의 역사현장을 우연히 찾을 기회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가장 신령스러운 산으로 꼽히는 이부키야마의 정상을 오른 뒤 하산길에 ‘세키가하라 결전지’ 표지판을 발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도요토미 히데요리(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의 서군이 패권을 놓고 격전을 펼친 곳이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기 2년 전인 1598년. 전국시대를 사실상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중 사망하고 7살짜리 어린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임진왜란이 끝나자 일본 정국은 정권을 잡기 위한 유력 다이묘들의 각축장으로 다시 바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쟁터로 나갔던 무공파 다이묘들을 회유하고, 이들과 혼인동맹을 맺어 최고 실력자로 부상한다.

아이즈에 근거를 둔 우에스기를 토벌하기 위해 나선 도쿠가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복이던 이시다 미쓰나리가 뒤를 치면서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를 결정짓는 전투가 벌어졌다. 미쓰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으로 유능한 관료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히데요시 사후 사실상 실권을 잡고 아들인 히데요리정권 옹립을 후원했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학식이 깊고 충성심이 강한 뛰어난 참모였다. 하지만, 그는 전투 실전 경험이 적었고, 보스로서의 리더십이 부족했다. 반면 평생을 전장터에서 보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철저한 경험주의자였다. 그는 50년이 넘는 실전 경험을 통해 실력을 키워왔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력을 물려받았을 뿐이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실전 경험이 많은 야전군 사령관과 머리가 좋은 참모 출신 장수와의 싸움이었다.

양측 세력은 1600년 10월21일 중부 기후현의 ‘세키가하라’에서 전면전을 벌였다.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마무리하고, 평화시대를 여는 전투였으나 하루 만에 싱겁게 승패가 결정났다.

현장에서 본 세키가하라 전쟁터는 논과 임야지대였다. 널찍한 들판엔 추수하고 남은 볏단이 드문드문 보였고, 들판 여기저기서 가을배추를 다듬고 있는 농촌 아낙들의 얼굴은 밝았다. 당시 전투를 벌였던 중심지에는 비석이 서있었다. 동군과 서군이 위치했던 곳에도 동군 대표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서군 대표인 이시다 미쓰나리의 이름이 쓰인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전적지의 소개 자료를 보니 당일 전투에 참가한 군사 숫자는 도쿠가와측 7만, 이시나리측 8만 명으로 서군이 우세했다. 진지의 위치도 서군이 높은 곳에 잡아 객관적인 전력과 지형에선 서군 측이 유리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도요토미군의 내부 모반이 도쿠가와군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왔다고 한다.

서군 8만 명 가운데 싸움에 적극 가담한 병졸 숫자는 3만 명에 불과했다. 부하의 배신으로 전국통일을 눈앞에 두고 목숨을 잃은 오다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도요토미정권도 결국 내부 모반으로 패하는 운명을 맞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의 승리를 계기로 일본의 패권을 잡고 250년 도쿠가와막부를 열게 된다.

70살이 넘게 장수한 도쿠가와는 말년에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의 천하다’ 말을 자주했다. 권력을 잡은 후손들이 통치에서 겸손할 것을 강조한 말이다. 한 평생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최후의 승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상 사는 처세는 바로 ‘인내’ 와 ‘겸손’이었다. 그는 인내에 인내를 거듭해 일본을 얻었고, 자손들에게도 그 지위를 물려주었다.

역사책에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처신을 보여주는 내용이 남아 있다. 서군이 패배한 채 도주해서 승리가 확정되자 가신 ‘이타베오카 고세쓰’는 개선가를 올리자고 제안했다. 이를 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무장들의 처자가 아직 오사카에 인질로 붙잡혀 있다. 내가 3일 안에 오사카를 공격해서 무장들에게 처자를 인도하고 안심시킨 후에야 비로서 승리를 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쿠가와 실기)

도쿠가와는 한평생 긴장을 풀지않고, 이겼다고 자만한 적이 없었다. 절대로 상황을 낙관하지 않고, 당면한 현실을 신중하게 주의 깊게 대처하는 이에야스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글=최인한 한경닷컴 대표 janus@hankyung.com
그림=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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