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간 논란이 된 상법 개정안의 일부가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여야는 지난 9일 상법개정안 중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 등은 전향적으로 처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기업은 재무팀과 법무팀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 동향 추이를 면밀히 살펴보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상법 개정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이 겹치면서 며칠째 떨어졌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재계 인사들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 헤지 펀드들의 공격에 의한 국부유출이 우려된다"며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이런 식으로 가져가서야 되겠는가"며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여러 상법 개정안은 '최순실 게이트'를 전후해 반기업 정서가 높아지면서 잇따라 발의됐다.

소액 주주 권리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재벌을 개혁하겠다는 게 명분이지만 현실적으로 헤지펀드 등 기업사냥꾼에게만 좋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대로 입법이 되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든 환경이 된다"고 우려했다.

상법 개정안 중 대표적인 것은 감사위원 이사를 뽑을 때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는 항목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물산 지분의 17.2% 가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현대자동차 지분의 5.2%를 가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결권도 3%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최대주주의 우호지분도 함께 급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의결권을 제한하면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회사(2013년 기준)의 최대주주 우호지분은 평균 42.05%에서 9.75%로 줄어든다고 대한상의는 설명했다.

반면 투기자본은 규정을 악용해 지분을 3%씩 쪼갠 뒤 표를 규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재계는 걱정하고 있다.

감사위원은 재무 상태 조사 등에서 일반 이사보다 더 큰 권한을 갖고 있다.

투기자본이 앞세운 감사위원을 통해 회사의 기밀 사항이 새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특정 후보에게 표(의결권)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소액주주가 선호하는 이사가 선출될 가능성을 높이자는 게 명분이다.

재계는 2006년 미국의 헤지펀드 칼 아이칸이 KT&G의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사례가 재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06년 당시 칼 아이칸은 정관상 집중투표제를 활용했다.

대한상의는 "우리나라처럼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20여개 나라지만 의무화를 한 곳은 칠레, 멕시코, 러시아 등 세 나라에 불과하다"며 "부작용이 많아서 의무화를 폐지한 해외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계가 우려하는 또 다른 상법 개정안 중 하나는 다중대표 소송제다.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할 때 제소 요건 등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역시 재계는 투기자본이 이 제도를 빌미로 경영권을 압박해 단기 차익을 노릴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또 기업 분할이나 분할 합병 때 기업이 원래 보유한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안은 향후 지배구조 개편이나 경영권 방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자투표 의무화', '근로자대표 추천 인사의 사외이사 선출 의무화' 등도 상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추진 중인 상법개정안은 대주주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며 "만약 국내 대기업이 헤지펀드에 장악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c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