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부 조직을 대폭 뜯어고치는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집권 세력의 필요에 따라 일방적이고 성급하게 진행되는 정부 조직개편은 실익이 없는 것은 물론 정책 일관성 저하, 조직 이전 비용 발생, 공무원들의 사기 저하 등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권 초기 '보여주기' 조직개편 안돼…'큰 정부' 아닌 '작은 정부'서 해답 찾아야"
전문가들은 절차적으론 현행 정부 조직의 문제점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기반한 신중한 조직개편이, 내용적으론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축할 수 있는 조직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야만 5년짜리 시한부 조직이 아니라 정권과 무관하게 장기 존속할 수 있는 정부조직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권 출범 직후 개편 지양해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새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짧은 기간에 단행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은 차기 정부부터라도 그만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 정부 조직의 문제점에 대한 광범위하고 전문화된 분석을 먼저 한 뒤 정부 기능 재조정이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의 조직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2일 “직원이 수만명에 불과한 대기업도 사업조직을 재편할 때 컨설팅까지 받고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는데 한국은 대통령선거 때마다 행정 전문가 몇 명이 모여 정부 조직개편안을 뚝딱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도 산업구조 변화 등을 반영해 현행 정부 기능과 역할에 문제점은 없는지, 바람직한 기능 재조정 방안은 무엇인지 심층적인 분석을 먼저 하고 이를 토대로 조직개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조직개편 대상인 공무원, 여야를 포함한 입법부가 모두 참여한 전문조직을 꾸려 정부 조직개편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전문조직은 특정 정권 출범 여부와 관계없이 시간을 두고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고, 차기 정부는 이에 근거해 정부 조직을 재구성하면 5년마다 되풀이되는 조직개편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정부 조직개편은 차기 정권 출범 2년이 지난 시점에 추진할 정도로 시간 여유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국 조정 방안도 검토할 만

정부 기능 재조정이 필요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부처 자체를 통폐합·신설·폐지하기보다는 실·국 등 부처의 하위조직을 이동시키는 ‘소규모 조직개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중훈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처 자체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지 않고 기능·역할·구성원이 유지되는 실·국만 다른 부처로 이관하는 조직개편을 시행하면 행정서비스 단절이나 공무원들의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법률(정부조직법) 자체를 고쳐야 가능하도록 돼 있는 현행 정부 조직개편 방식은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처럼 대통령령으로 가능하도록 법을 고쳐 시대변화에 맞게 정부 조직을 발 빠르게 고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조직 고민을

전문가들은 과감한 민간 이양 등을 통해 정부 조직을 축소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의 정부 조직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정수 교수는 “개발연대 시기를 지난 한국은 이제 경제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과 능력이 사실상 사라졌다”며 “시장과 민간의 창의성이 최대한 잘 작동하도록 하는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 조직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작년 5월 발표한 ‘정부 규모와 경제발전: 공무원 수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00~2010년 일반정부 인력 평균치는 26개 OECD 조사 대상국 중 10위였지만 정부의 시장 활동 개입 정도(생산물시장 규제지표)는 4위였다. 그만큼 한국은 정부가 다양한 산업정책 등을 통해 공무원 인력 규모에 비해 넓은 영역에서 시장과 민간분야를 통제하며 경제발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신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10년 이후에도 공무원 수와 정부 규제 수, 정부 부채·자산의 절대 규모와 비중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민간부문의 위축이 지속되고 있다”며 “공무원 인력은 작은 규모를 유지하는 가운데 정부 활동 영역은 공공재 공급과 재산권 보호, 공정한 법 집행 등 필수 영역으로 축소해 경제발전과 성장 친화적인 정부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