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의 무역정책 최고 참모인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작심한 듯 중국 독일 일본을 환율조작국으로 몰아세우면서 사실상 통화전쟁에 돌입했다.

그동안 중국을 핵심 타깃으로 해왔으나 통화전쟁의 대상을 독일과 일본으로 확대했다. 독일과 일본은 환율을 조작하지 않았다며 즉각 반발했다.
['통화전쟁' 나선 미국] 트럼프 "중국·일본·독일에 바보처럼 당했다"…무역 3강에 전면전 선포
◆4분기 수출 둔화가 불 댕겼나

나바로  NTC 위원장
나바로 NTC 위원장
미국은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1.9%에 그쳤다. 전분기 3.5%에서 크게 떨어졌다. 미 상무부는 달러 강세에 따른 수출 부진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4분기 수출이 4.3% 줄어든 반면 수입은 8% 늘면서 대규모 무역적자가 발생해 전체 성장률을 1.7%포인트 끌어내렸다고 분석했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은 중국(3657억달러), 독일(742억달러), 일본(686억달러) 순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바로 위원장은 상위 3개국을 콕 집어 맹공한 것이다. 수출 증대와 내수 부양으로 연 3.5~4% 경제 성장을 공약으로 내세운 트럼프 정부로선 강(强)달러 해소가 ‘발등의 불’이 됐다.

미국이 중국 독일 일본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을 활용하면 세 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 미 재무부는 오는 4월 환율정책보고서를 내놓는다.

◆“트럼프가 희생양을 찾고 있다”

스웨덴을 방문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나바로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독일 정부는 유로화와 그 가치 문제와 관련해 유럽중앙은행(ECB)이 독립적으로 정책을 잘 결정할 수 있게끔 노력한 국가(일 뿐)”라며 “유로화 환율정책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독일 언론들은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그는 희생양을 찾을 것”이라며 “독일 기업들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의장은 EU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회원국들에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고 역공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조작 지적에 “그런 비판은 맞지 않는다”며 “필요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본 정부는 미국에서 고속철도와 에너지,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 투자해 수십 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포괄적 정책 패키지를 ‘선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 중인 국경세도 구체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착착 이행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상 분야 공약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선언은 이미 이뤄졌다. 남은 것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교역국에 대한 불공정 행위 전면 조사 및 대응, 중국산 및 멕시코산 수입품에 대한 35~45% 관세(일명 국경세) 부과 등이다.

이 중 논란이 되는 국경세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나바로 위원장은 “미국 내 제조업체들이 외국산이 아니라 미국산 부품을 쓰게 해서 미국인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을 높여 나가야 한다”며 “하원에서 마련 중인 ‘국경조정세’가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경조정세는 수출에 따른 기업 수익에는 세금을 면제하고, 수입부품을 쓸 때는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아 세금을 더 내게 하는 과세 방안이다. 수입 억제·수출 독려형 세제다.

워싱턴=박수진/도쿄=서정환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