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중국 중심으로 세계 무역질서를 재편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왕쥔 중국 외교부 국제경제국장은 지난 23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가 필요로 한다면 중국은 세계 경제를 주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왕 국장은 이어 “중국이 갑자기 나서는 것이 아니고,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던 리더 국가들이 역할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축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TPP 탈퇴'] 빈틈 노리는 중국…"글로벌 자유무역 주도할 준비 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왕 국장의 이번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취임사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다시 한번 강조한 직후 나온 것”이라며 “향후 세계 무역질서 재편을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지난 17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보호주의는 스스로를 어두운 방 안에 가두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중국이 세계화와 자유무역 질서를 앞장서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했다.

FTAAP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 회원국을 포괄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이고, RCEP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가 참여하는 16개국 간 다자 무역협정이다. 두 협정 모두 미국 중심의 TPP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이 주도해왔지만 TPP에 우선순위가 밀렸다.

하지만 미국이 TPP 탈퇴를 결정하면서 FTAAP와 RCEP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은 트럼프 당선 이후 RCEP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TPP에 공을 들여온 일본까지 가세할 경우 RCEP 논의가 가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미국 대선 직후인 작년 11월19~20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문호를 닫지 않고 더 넓게 열겠다”며 FTAAP와 RCEP를 보다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APEC 정상들은 향후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와 지역경제 통합을 위해 FTAAP를 적극 추진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리마선언’을 채택했다.

중국 정부는 단기적으로 FTAAP보다 RCEP 협상 타결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참여 국가 숫자, 경제 개방 수준,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 등을 감안할 때 RCEP 협상 타결이 훨씬 쉬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RCEP는 지난해 12월10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16차 실무협상을 통해 중소기업 분야 논의를 마무리한 상태다. RCEP 회원국들은 다음달 일본에서 협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협상을 마무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FTAAP는 협상 개시 일정이 합의되지 않았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