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직개편ㆍ대형투자 올스톱…'총수 부재' 비상경영 체제 준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될 처지에 놓이면서 대한민국 대표 기업집단, 삼성의 경영 활동이 사실상 멈춰섰다.

삼성그룹은 "구속될 사유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 부회장 구속이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비상경영 체제 준비에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코앞에 다가왔고,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무역보복 강도를 높이는 등 글로벌 경영 환경이 악화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삼성은 특검 수사만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IT 기업 CEO들을 물론, 중국의 마윈 알리바바 회장,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등이 잇따라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고 소통하며 미국발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으나 삼성은 대미(對美) 사업 전략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10일 중국에서 만들어진 삼성전자의 가정용 세탁기에 52.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부터 보호무역의 파고는 높아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작년 11월 80억 달러에 사들이기로 한 미국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의 인수도 차질이 우려된다.

삼성은 올해 11월까지 인수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지만, 일부 주주의 반대 의견이 제시된 상황에서 특검 수사가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할까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하만의 주주들은 지난 3일 하만의 디네쉬 팔리월 CEO 등 이사진이 삼성전자와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집단소송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미국 현지로 날아가 주주와 임직원들을 만나 향후 투자계획을 밝히는 등 설득 작업을 벌여야 하나 특검의 출국금지 조치로 국내에 발이 묶여 있다.

게다가 이 부회장이 뇌물 혐의로 특검 조사를 받는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낙인 찍히게 돼 향후 소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봐 삼성은 우려하고 있다.

작년 말에 이뤄졌어야 할 인사와 조직개편 작업도 한정 없이 지연되고 있다.

올해 경영계획도 잡지 못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급속한 경영환경 변화에 맞게 조직을 개편하고 새 사업 투자도 해야 하는데, 이런 중대한 의사결정이 미뤄지고 있다"며 "2008년에도 특검 수사를 받느라 5대 신수종사업 선정이 늦어져 태양광과 LED 분야에서 결국 경쟁력을 상실했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그룹 총수는 세계 무대를 오가면서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데, 출국금지 조치로 이런 역할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 2017'이나 오는 17∼20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참석은 물 건너갔고, 오는 3월 예정된 중국 보아오(博鰲)포럼 참석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이 부회장은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 이사를 맡고 있다.

이 밖에 이 부회장이 사외이사로 참여하는 이탈리아 자동차그룹 엑소르(Exor)사의 이사회도 조만간 열릴 예정이나 이 역시 참석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엑소르는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지주회사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외국 CEO들과 1년에 수십 차례 미팅을 하고 비즈니스를 논의해왔으나 특검 수사로 한국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삼성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김연숙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