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연봉 많이 주면 기업 실적 좋아질까
최고경영자(CEO)에게 연봉을 많이 주면 기업 성과가 더 좋아질까. 요즘 영국에서는 이 문제로 논란이 한창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지난해 7월 취임 후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며 CEO 보수가 너무 높은 점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12월28일자 두 번째 섹션 하단에 한 연구를 비중있게 소개했다. 영국 랭커스터대 경영대학원 연구진이 영국 재무분석사(CFA) 협회의 지원으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2년간 영국 증시에 상장된 350대 기업(FTSE 350)의 실적과 CEO 보수를 조사한 결과 둘 간의 상관관계는 ‘거의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라고 주장한 내용이다.
CEO 연봉 많이 주면 기업 실적 좋아질까
이 기간 CEO에 대한 보수(연봉·상여금·스톡옵션 등)의 중앙값은 물가상승 효과를 제외하고도 82% 상승해 2014년 150만파운드(약 22억원)에 이르렀다. 글로벌 금융위기 타격을 받은 2008~2009년 약간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꾸준히 올랐다. 반면 금융위기 때문에 이 기간 기업 실적은 크게 출렁였다. 연구진은 기업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주가 등 대신 ‘투하자본 대비 이익 규모’의 중앙값을 기준으로 썼다. 이렇게 보면, 연구대상 기간에 기업 이익은 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증가만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단기적 성과인 주가 상승이나 주당순이익(EPS)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보수는 꾸준히 올랐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이틀 뒤 회계법인 마자르의 앤서니 캐리 이사회 사무국장은 “지금이 ‘기업 지배구조 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할 때”라는 글을 투고했다. 그는 기업 이사회 구성원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를 담은 캐드버리 보고서(1992년)와 그린버리 보고서(1995년) 후 20여년간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메이 정부의 구상을 지지하는 기조다.

이에 지난 4일 비상임이사들의 조직인 러섬 NED그룹의 배리 갬블 회장이 반박 투고문을 게재했다. 갬블 회장은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이미 존재한다”며 “모든 기업 지배구조가 완벽하진 않지만 대부분의 비상임이사는 경영진이 건설적인 도전을 받아들이고 주주들에게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상임이사가 제 역할을 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CEO 보수와 기업의 실적이 정비례 관계라면 주주들이 당장 급여를 더 주겠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양(+)의 관계는 있을지언정 정비례 관계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영국 CEO가 독일 CEO보다 50%는 더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기업의 실적이 평균적으로 독일 기업보다 50% 좋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월급쟁이 CEO가 몇 억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 한국과 비교하면 기업 실적과 CEO 보수 간 괴리는 더 크게 느껴진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가 만든 경영자·노동자 보수 배율 그래프를 보면 미국도 원래 이렇게 CEO에게 고액 연봉을 주는 나라는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경기 호황기에 CEO 보상 규모가 높이 치솟았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영향을 줬겠지만 직접 관련은 적어 보인다. 실적보다 경제 분위기나 비슷한 수준의 경영자가 얼마를 받느냐는 문화적 요소가 연봉 수준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오히려 영국의 사례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논쟁이다. CEO 보수에 관한 연구 결과는 자연스럽게 기업 지배구조를 다시 검증해 보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런 기조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