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혜원 기자 ] 대학생 A씨는 작년 가을 편도 3만 원대 항공권으로 태국 방콕으로 떠났다. 저비용항공사(LCC)의 특가 항공권을 구매한 덕분이다. 처음에는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항공사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중 특가 행사를 발견하고 해외 여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방콕행 특가 항공권이 알아보던 제주행 항공권 비용보다 8만~9만 원 가량 더 쌌기 때문이다.

국내에 비해 현지 숙박 비용도 크게 저렴했다. 5성급 비즈니스 호텔의 경우 4만~5만 원대의 가격에 숙박할 수 있었다. A씨는 "항공권과 숙박 시설을 싼 값에 예약하면 국내보다 해외 여행이 오히려 '가성비' 면에서 더 나았다"고 말했다.

LCC 간 경쟁 심화로 항공권 가격 할인이 잇따르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늘고 있다. 할인 경쟁 덕분에 홍콩, 대만 등 단거리 노선의 경우 편도 기준 2만~3만원 대 항공권 구매가 가능할 정도다. '저가'를 앞세운 가성비 높은 항공권들이 불황 속에서도 여행 수요를 자극한 것이다.
경기 부진 속에서도 해외여행 수요가 늘고 있다. / 한국경제DB
경기 부진 속에서도 해외여행 수요가 늘고 있다. / 한국경제DB
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제선 항공 여객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3% 증가한 약 6669만명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국적 LCC 이용객은 55% 늘어난 1335만명이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대형항공사는 8.7% 상승한 3023만명을 기록했다. LCC 여객 증가율이 대형항공사의 6~7배에 달했다.

이처럼 LCC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 심리 위축에도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난 데에는 LCC가 큰 영향을 끼쳤다. LCC 이용으로 해외여행 비용부담이 과거보다 줄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비 욕구는 높아졌지만 소비 여력은 줄어드는 상황과 저가 항공권 공급이 맞물리면서 해외여행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가 해외여행 수요와 맞아 떨어졌다고 부연했다.

임영주 흥국증권 연구원은 "성장률 둔화로 소비 심리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소비 자체의 총량만 놓고 보면 과거보다는 높아졌다"면서 "저성장과 별개로 저가의 상품이 히트하는 경우가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값이 싼 것은 항공권 뿐만이 아니다. 해외 현지에서 쓰는 비용도 줄었다. LCC들이 앞다퉈 단거리 노선 확대에 나서면서 국내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대만, 태국, 베트남 등 중화권과 동남아 노선 여객이 크게 증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지역별 항공여객 비중은 LCC가 집중했던 동남아(34%)가 가장 높았다. 중국(27.7%)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국가는 숙박, 외식 등 비용이 국내에 비해 매우 싸다. 특급 호텔의 경우 국내 가격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고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젊은층 사이에선 물가가 싼 해외에서 현지 특급 호텔 숙박이나 고급 식사 등을 즐기는 이른바 '호텔 놀이'도 유행하고 있다. 같은 비용으로 럭셔리한 소비를 할 수 있어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30대 회사원 이소연 씨는 "지난 휴가 때 편도 10만원 대의 저가 항공권을 구매해 베트남 다낭에 다녀왔다"며 "특급 호텔을 이용하고 일정을 마사지, 크루즈 투어 등 고급 여행코스 구성했지만 비용은 웬만한 국내 여행보다 적게 들었다"고 귀띔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