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명예회장은 본인이 개발한 ‘베지밀’을 매일 마시는 것을 장수비결로 꼽는다. 이를 알리기위해 2013년까지 매년 1월1일 임직원들에게 그해 찍은 본인 증명사진을 보냈다. 사진은 2013년 만 96세 때 찍은 정 명예회장 모습.
정 명예회장은 본인이 개발한 ‘베지밀’을 매일 마시는 것을 장수비결로 꼽는다. 이를 알리기위해 2013년까지 매년 1월1일 임직원들에게 그해 찍은 본인 증명사진을 보냈다. 사진은 2013년 만 96세 때 찍은 정 명예회장 모습.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이 지난 4일로 만 100세를 맞았다. 그는 식품업계 최고령 명예회장이다. 1917년 1월4일이 정 명예회장의 생년월일. 정 명예회장은 이날 늦은 오후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회사 임원들과 일부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생일상을 받았다. 별다른 지병은 없지만 워낙 고령이라 간단하게 생일잔치를 했다.

정 명예회장은 몇 년 전부터 자택에서 업무를 챙기고 있다. 100세가 넘어가는 고령 탓에 건강이 좋지 않다. 짧은 거리는 지팡이를 짚고 걷지만, 대부분은 휠체어를 탄다. 하지만 판단 능력은 여전히 젊은 시절 못지않다는 게 회사 측 얘기다. 매일 아침 EBS를 틀어놓고 영어방송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날 생일잔치에서도 고령의 몸을 이끌고 ‘베지밀’에 대한 애착을 쏟아냈다. 그는 임원들에게 “한국 성인의 75%가 앓고 있는 유당불내증(유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장애)을 소비자들이 제대로 인지하고, 두유처럼 자연이 준 식물성 식품을 통해 국민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라며 “베지밀이 지난 44년간 고집해 온 가치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이 1955년 서울 중구 회현동 본인이 운영하던 정소아과 앞에서 찍은 사진.
정 명예회장이 1955년 서울 중구 회현동 본인이 운영하던 정소아과 앞에서 찍은 사진.
1937년부터 소아과 의사로 재직한 정 명예회장은 아이들이 모유와 우유 속에 들어 있는 유당 성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관련 연구에 한평생을 바쳤다. 1967년 처음으로 베지밀을 개발해 허가를 받았고, 1973년 두유 전문회사인 정식품을 설립했다.

정 명예회장은 매일 아침 베지밀을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임직원에게 두유 음료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매년 1월1일이면 개인 사진사를 불러 증명사진을 찍는다. 정 명예회장은 “베지밀을 매일 마셨더니 나이가 먹어서도 검은 머리가 난다”며 제품에 자부심을 갖도록 격려한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임원들에게 “장사꾼이 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그는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인 것은 맞지만 그보다 소비자에 대한 진심이 우선되면 좋을 것”이라며 “소비자에게 돈보다는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맛보다는 영양을 우선한 기업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주문했다. 정 명예회장의 콩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15년 국내 최초 콩세계과학관이 문을 열자 만 98세의 몸을 이끌고 직접 경북 영주까지 내려가 행사에 참석했다.

정 명예회장은 또 이날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두유를 효과적으로 다시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정식품은 작년 8월 임신·수유부 전용 두유인 ‘베지밀 건강맘’을 내놓는 등 연령별·기능별 제품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작년 4월에는 젊은 층을 겨냥한 ‘리얼 코코넛 밀크’도 내놨다.

정 명예회장은 “잠시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임원은 “고령인데도 임원들을 직접 집으로 초대해 일일이 안부 인사와 회사를 위해 노력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