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와 저물가, 저성장이 일상이던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작년 말부터 세계는 물가상승 예감으로 들썩거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간 이어진 금융완화 정책도 긴축으로 선회하고 있다. 한국도 오랜 저금리·저물가를 떼어내고 새 물길로 뛰어들었지만 저성장은 오히려 심화될 기세다. 신흥국들은 달러 강세로 인한 자금 이탈 쓰나미까지 걱정하고 있다.
[대변혁 시대…다시 시작이다] 3저 '뉴 노멀 시대'의 종언…신흥국 '자금이탈 쓰나미' 덮치나
금리·물가 자극한 ‘트럼플레이션’

“지난 7년간은 비정상의 시대였다.” 지난달 16일 재닛 옐런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저금리 시대의 종언을 이같이 선언했다. 이날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미국 경제 호조에 힘입어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1년 전 금리 인상 때는 조용하던 시장이 이번엔 급변했다. 글로벌 시장금리가 뛰고 달러는 초강세를 이어갔다. 중앙은행들의 ‘돈줄 조이기’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제로 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까지 단행했던 유럽중앙은행 (ECB)이나 일본은행도 고민에 휩싸였다. 한계에 부딪힌 통화완화 대신 재정완화가 새로운 돌파구로 제기됐다. 트럼프 당선자가 1조달러에 이르는 인프라 투자를 공약으로 내걸자 ‘트럼플레이션(Trumpflation)’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트럼프의 재정 투입으로 물가가 오른다는 의미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때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대처는 금리 인상이다. FOMC는 이미 연내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좀처럼 들썩이지 않던 물가와 금리가 동반 상승하기 시작했다.

저물가 배경이던 유가 하락세도 멈췄다. 작년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8년 만에 감산에 합의하면서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유가 상승은 수요 증가보다 공급 조정 차원이라 부정적 영향이 커 보인다”며 “물가가 높아지면 통화완화 여력이 떨어져 개발도상국의 충격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긴축발작, 한국 안정권 아니다

신흥국에 몰려왔던 글로벌 자금은 귀환을 서두르고 있다. 선진국 긴축 탓에 신흥국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긴축발작’ 우려가 크다.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채권시장에서 주식시장으로 유동성이 이동하는 ‘대전환(great rotation)’은 시장의 최대 화두다.

한국도 안정권이 아니다. 미국이 예상대로 올해 금리를 세 차례 올리면 미 정책금리가 연 1.25~1.50%로 높아진다. 저성장으로 사상 최저 금리(연 1.25%)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보다 오히려 금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시장금리는 일부에서 이미 역전됐다.

강달러 현상도 자금 이탈을 부채질할 수 있다. 지난달 말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1200원을 돌파했다. 전문가들은 환율 1200원 선을 외국인의 원화 매도를 자극할 수 있는 기점으로 꼽는다.

대전환에 맞설 컨트롤타워는?

저물가·저금리·저달러(달러 약세)라는 기존 질서가 새해 벽두부터 대전환을 맞았지만 한국 경제는 길을 잃고 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미국 금리 인상은 과거와 달리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정책 컨트롤타워가 불안한 데다 가계부채 급증,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국내 위험요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정치적 불확실성은 커졌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구조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마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외환위기 이후 처음 2%대(2.6%)로 낮췄다.

금리상승기에 자금 유출을 막으려면 한은 또한 언젠가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경제주체의 자신감이 떨어진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상 재정건전성을 무시하면서까지 돈을 풀기도 쉽지 않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한경·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