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차이나 시노펙 등 국유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중국 천연가스 시장에 중소 민간 에너지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셰브론, 영국 BP 등 글로벌 에너지 업체가 만성적인 공급 과잉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 민간 에너지 기업과의 거래를 늘리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도 천연가스 시장의 국유기업 독점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민간 에너지 기업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천연가스 시장서도 '찻주전자' 뜬다
◆글로벌 기업 “中 민간 기업 잡아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글로벌 에너지 업체들이 새로운 천연가스 수요처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민간 에너지 기업과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고 30일 보도했다.

셰브론과 프랑스 토탈은 올해 홍콩에 있는 민간기업 ENN홀딩스와 천연가스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ENN홀딩스는 1980년 천연가스통 제작업체로 출발했지만 이후 천연가스 공급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연간 50억달러(약 6조원) 규모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한다. 셰브론은 광저우의 민간 에너지 기업 조보그룹에도 천연가스를 판매하기로 했다. BP는 최근 중국의 화뎬그룹과 20년간 매년 5억달러어치의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중국 내 천연가스 유통시장은 국유기업인 페트로차이나와 시노펙 등이 85% 전후 점유율로 지배해 왔다. 민간 기업의 비중은 10% 수준에 그쳤다.

천연가스 분야 컨설팅 회사인 IHS마르킷의 로버트 이너슨 애널리스트는 “세계 천연가스 시장이 만성적인 공급 과잉 상태에 빠지자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들은 중국 민간 에너지 기업을 새로운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셰일가스 개발업체들도 중국 민간 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멕시코만 지역의 셰일가스 개발회사 SCT&E는 올해 초 조보그룹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국으로의 천연가스 수출을 위한 전용 항구를 확보했다. WSJ는 “미국도 셰일가스 개발 붐 지속을 위해서는 중국 민간 에너지 기업과 거래를 트는 것이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천연가스 시장도 민간기업 두각

중국 정부는 그동안 스모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나가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산업은 여전히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천연가스에 비해 석탄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국 내 전체 에너지원 가운데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6%(2015년 기준)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달 중순께 베이징을 비롯한 북동부지역에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한 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까지 나서 “난방할 때 석탄 대신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라”고 지시한 만큼 천연가스 사용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국무원 산하 싱크탱크인 발전연구중심은 중국의 전체 에너지원 중 천연가스 비중이 2030년이면 15%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정유시장에서는 이미 ‘찻주전자(teapot)’로 불리는 민간 정유사들이 ‘큰손’으로 부상했다. 정부가 에너지시장을 개혁하기 위해 작년 7월부터 민간 정유사의 원유 직접 수입을 허용한 덕분이다. 이 여파로 올 들어 중국의 원유 수입 증가분 대부분을 민간 정유사가 차지했다.

WSJ는 “민간 에너지 기업들이 중국 정유시장에 이어 천연가스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