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의혹' 침울한 분위기속 정유년 맞아
종무식은 대부분 생략하고 시무식은 차분하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검찰 수사로 연말에 경영활동이 멈춰 서다시피 하면서 재계가 무거운 마음으로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맞게 됐다.

대기업 총수들의 새해 메시지는 대체로 '위기 돌파', '변화ㆍ혁신'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래도 특검 수사, 조기 대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등 대내외 정치 변수와 불확실성이 산적한 새해 상황과 맞물려 있다.

10대 그룹 대부분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특검 수사 대상에 올라있는 처지여서 경영 활동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신년 구상에서부터 차질이 빚어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SK, LG, GS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새해를 맞아 임직원들에게 알릴 신년 메시지 또는 경영 방침을 가다듬고 있다.

삼성그룹은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작년부터 그룹 차원의 신년하례식을 하지 않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요 계열사 사업장을 돌며 경영진과 간담회를 통해 새해 목표와 전략을 점검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내년 일정은 아직 불투명하다.

내년도 경영계획도 수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룹 차원의 신년 화두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은 통상 12월 초에 하던 사장단·임원 인사를 비롯해 연말 행사도 대부분 무기한 연기했다.

출국금지 상태인 이 부회장은 당분간 운신의 폭이 좁은 상태다.

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 참관할 수 없게 됐다.

2월에는 사외이사로 참여하는 엑소르 이사회도 앞두고 있지만 역시 참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검 수사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 등을 정조준하고 있고 곧 이 부회장이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삼성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급선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내달 2일 오전 양재동 본사 강당에서 열리는 시무식에서 그룹 임직원과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내년 판매 목표와 전략 등 신년 구상을 밝힌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연말연시 자택에 머무르면서 내년 사업계획 구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현대차 중국 충칭(重慶) 공장이 완공되고, 올해 준공한 기아차 멕시코공장 생산대수도 올해 10여만대보다 2배 이상 늘어난 20여만대 수준으로 늘어나는 만큼 글로벌 판매 전략 구상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은 내년 초 단행될 그룹 임원인사도 챙겨볼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은 해마다 연말에 임원인사를 실시해왔으나 올해는 정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 검찰 수사와 국회 청문회 출석 등으로 경영 활동에 영향을 받으면서 임원인사를 하지 못했고 이번 주 초 부장급 이하 직원인사만 실시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내달 2일 워커힐호텔 신년회에서 발표할 신년사에는 지난 10월 CEO 세미나에서 강조한 '변화와 혁신'이 키워드로 담길 예정이다.

당시 세미나에서 최 회장과 SK 관계사 CEO들은 독하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기존 사업과 조직,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신년사도 이와 궤를 같이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이달 중순 주력 계열사들의 사장단을 대폭 물갈이하는 과감한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연말·연초에 국내에 머물며 사업모델 혁신과 신규 투자 등 경영구상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1월 중순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단골 참석자이지만 올해에는 특검의 출국금지 조치로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내달 2일 발표할 신년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 회장은 내년에도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보호무역주의가 강화하는 등 어려운 경영환경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변화와 혁신으로 사업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 기회를 만들어 위기를 돌파할 것을 주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다음 달 2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리는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진그룹에 따르면 조 회장은 신년사에서 행복과 안전, 기준과 원칙 등 세 가지 키워드를 강조할 예정이다.

특히 안전은 항공사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절대 명제'인 만큼 안전운항을 당부할 계획이다.

조 회장은 당분간 국내에 머물면서 임직원 인사를 최종 점검하고 대한항공 수익 개선을 위한 경영 구상에 집중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그룹은 내년 1월 중 임직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내년 1월 2일 시무식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신년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권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철강 본연의 경쟁력 강화, 그룹 사업구조 혁신 지속, 미래 성장사업 개척 등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은 지난해 시무식에서도 기업의 구조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철강업계가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 수입규제 강화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어서 올해도 위기 극복을 위한 메시지가 재차 강조될 전망이다.

다만 권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 끝나는 데다가 지난 9일 정기 이사회에서 연임 의사를 밝힌 터라 적극적인 신년 행보를 보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다음 달 2일 전체 임원 조회인 'GS신년모임'에서 새해 경영 구상을 밝힐 계획이다.

GS그룹에 따르면 이날 발표할 신년 메시지에는 당면한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진화의 DNA'를 조직문화로 정착하자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를 통한 수익기반 다변화와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장려하기로 했다.

또 "끈기 있는 실행력이 곧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기치 아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끈기와 집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다음 달 20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 참석을 앞두고 있다.

또 한화그룹 계열사 CEO를 비롯해 김 회장의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등은 1월 17∼20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은 내달 1일 사내 게시판에 신년사를 올려 직원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만큼 새해 첫주에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 등 계열사의 서울 사무소 각층을 돌며 직원들과 새해 덕담을 나눌 계획이다.

한편 대기업들은 올해 대체로 종무식은 생략하고 시무식은 예년과 동일하게 하되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등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주요 그룹 가운데 종무식을 한 곳은 LG와 한화그룹의 일부 계열사 정도였다.

삼성, LG, 두산 등은 연차휴가 소진 차원에서 연말에 현안이 있는 부서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에 대해서는 휴가를 권장하고 있다.

시무식의 경우 SK, 한화그룹은 예년처럼 신년 하례회를 열되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할 예정이고, 롯데그룹은 내년 1월1일에 주요 간부만 참석하는 조촐한 시무식을 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yjkim8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