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인간의 무의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뉴로 마케팅’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는 뭘까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코카콜라 대 펩시. 콜라 시장에서 두 라이벌의 승부만큼 마케터들의 골치를 아프게 한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펩시가 전 세계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블라인드 테스트(눈을 가리고 시음하는 것)에서 펩시가 코카콜라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열세였기 때문이다.

마케터들은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을 ‘브랜드 파워’로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콜라의 ‘맛’ 이상으로 ‘브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코카콜라가 펩시보다 강력하고 호의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소비 의사 결정 과정에서 브랜드가 미치는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을까. 설문 조사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등과 같은 전통적인 조사 기법으로는 충분한 해답을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나이키·로레알·P&G 등 글로벌 기업들 속속 도입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는 뭘까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새로운 학문 분야가 소비자의 구매 태도 및 행동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뇌연구 분야다. 미국 마케팅 학자들과 뇌과학자들이 코카콜라와 펩시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뇌 반응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연구해 브랜드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었다.

연구팀은 먼저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본인이 마신 콜라가 어떤 브랜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콜라를 마시게 하자 양쪽 모두 동일한 뇌 영역이 활성화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상 반응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활성화됐다(뇌의 영역에서 달콤한 맛은 보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브랜드를 알려주면서 콜라를 제공하자 그 즉시 뇌 영상이 달라졌다. 코카콜라를 음미할 때는 전두엽 외에도 중뇌와 대뇌에 있는 정서 및 기억을 담당하는 또 다른 영역이(전전두엽과 해마) 활성화됐지만 펩시를 마실 때는 그렇지 않았다. 소비자의 뇌가 코카콜라 브랜드를 인식할 때 펩시에 비해 보다 더 강력하게 반응했다.

이처럼 최근 뇌연구에서 도출한 심리학적 결과를 바탕으로 고객의 구매 태도를 연구하고 이를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 적용하는 ‘뉴로 마케팅(neuro marketing)’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뉴로 마케팅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뉴로 마케팅은 뇌 영상 촬영, 뇌파 측정, 시선 추적 등 뇌과학 기술을 이용해 소비자의 뇌세포 활성화나 자율신경계 변화를 측정해 소비자 심리 및 행동을 이해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시도다. 뉴로 마케팅의 본질은 소비자의 잠재의식에 대한 과학적 탐구다. 즉 소비자 구매 행동의 상당 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내재돼 있는 잠재의식에 의해 이뤄진다는 관점이다.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는 뉴로 마케팅의 잠재력을 인정했다. 포천은 뉴로 마케팅을 미래 10대 기술로 선정했다. 뉴욕타임스·뉴스위크 등은 음료·식품·화장품·패션·정보기술(IT)·자동차·영화 등 다양한 산업에서 뉴로 마케팅이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코카콜라·P&G·유니레버·로레알·켈로그·나이키·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HP·혼다·20세기폭스 등이 뉴로 마케팅을 활용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국내에서 뉴로 마케팅의 활용은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뇌신경 과학의 의학적 진보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뇌신경 과학의 연구 성과가 급속히 발전하고 이를 기반으로 화장품·전자·이동통신·인터넷 포털 서비스 분야의 대표 기업을 중심으로 뉴로 마케팅이 확대되는 추세다.

뉴로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성의 측정’에 있다. 감성은 이제 기업 경영 활동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감성 마케팅이 대표적인 예다. 감성 마케팅은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 등 인간의 신체감각을 통해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하는 마케팅 활동이다.

예컨대 요즘 휴대전화 업체들은 터치폰 등을 통해 소비자의 오감을 공략하느라 분주하다. 뉴로 마케팅은 이런 문제에 상당한 해답을 준다. 오감의 자극을 받은 소비자들의 뇌 영역에서 일어나는 뇌세포 활성 정도를 보여주고 또한 자율신경계의 변화 상태를 측정해 소비자의 흥분이나 집중·각성 등의 감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마케팅 분야에 접목되는 과학기술

최근 뉴로 마케팅이 부상하는 배경은 3가지다. 첫째, 뉴로 마케팅은 전통적 소비자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유용하다. 설문 조사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같은 전통적 조사 기법들은 기업이 투입한 비용과 시간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해 자신의 속마음과 다르게 말하는 이도 흔하고 소비자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도 많다. 사실 소비자들은 자신도 잘 모르는 이유로 어떤 제품을 구매하거나 어떤 광고에 호감을 갖게 되는데, 기존의 조사 방법으로는 소비자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없다.

또한 회사들이 저마다 소비자 연구를 활발히 벌이고 있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기존 방식으로는 경쟁사와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둘째, 뇌 영상 기술의 발달이다. 뉴로 마케팅에서 가장 유용한 기술은 fMRI라는 뇌 영상 장치다. 이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동하면서 혈액이 모이는 현상을 마치 불이 켜지는 것처럼 보여준다. 자극을 주고 동시에 뇌 영상을 촬영하면 소비자의 무의식적 반응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뇌파 조사(EEG), 시선 추적(Eye tracking), 피부 전도도 반응(GSR) 등과 같은 자율신경계 반응 조사 기술의 발달도 뉴로 마케팅의 부상을 견인하고 있다. 특히 시선 추적 및 뇌파 조사는 실험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셋째, 뇌신경 과학과 다양한 학문들의 융합이다. 통섭이란 말로 통칭되는 지식 간 융합과 통합은 21세기 학문의 화두로 대두됐다. 의학·생물학의 분야를 넘어 정치·경제·정보기술·마케팅·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뇌를 중심으로 서로 통합되고 융합 연구가 가속화하고 있다. 뉴로 마케팅은 의학·생물학·마케팅·심리학의 융합 연구로 볼 수 있다.

뉴로 마케팅이 활용 가능한 분야는 크게 제품 개발, 디자인 개선, 광고 효과 측정, 매장 동선 및 디스플레이 개선, 웹사이트 사용자 환경(UI) 개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제품 개발 기업은 뇌 영상 촬영, 뇌파 조사 등에 의한 뇌 반응을 통해 신제품 개발 콘셉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혼다는 뉴로 마케팅을 활용해 정면에서 보면 마치 화가 난 사람의 얼굴 같은 디자인의 오토바이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사람의 뇌에는 얼굴을 인식하는 신경 회로인 ‘얼굴 뉴런’이 있어 얼굴과 유사한 형태에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다 빨리 인지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뇌 영상 촬영을 이용한 실험 결과 얼굴 모양 디자인의 경우 사람의 얼굴을 봤을 때와 비슷한 뇌 반응을 일으켜 상대편 차가 오토바이를 발견할 가능성이 43%나 높아졌다고 한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는 뭘까
◆제품 개발, 디자인 개선 등에 활용 가능

디자인도 개선할 수 있다. 기업은 뇌 영상 촬영, 시선 추적 등에 의한 뇌 반응을 통해 디자인 개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한 가전 업체는 냉장고를 보는 소비자의 시선을 추적해 제품의 디자인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를 했다.

소비자가 냉장고를 보는 시선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다. 가전 업체는 소비자의 시선이 제품의 어느 부분에 분포돼 있는지, 각 영역별로 소비자가 집중해 본 부분은 어디인지, 시선을 가장 먼저 끄는 곳은 어디인지 등을 분석했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디자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품을 개선했다.

광고 효과 분석도 가능하다. 소비자에게 광고 호감도 등을 질문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기존 조사 방식으로는 순간의 느낌이 중요한 광고의 효과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기업은 뇌 영상, 뇌파 조사, 시선 추적 등을 통해 광고를 보는 동안 소비자의 감정 변화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또한 기업은 뉴로 마케팅을 활용해 매장 내 고객 경험을 개선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시선 추적은 고객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매장 동선을 개선하고 물건이 더 잘 팔릴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한 업체는 시선 추적 방식을 통해 매장 동선 및 디스플레이 방식을 변경해 성공을 거뒀다. 이 업체는 쇼핑객에게 카메라가 달린 안경을 끼도록 하고 매장을 자유롭게 쇼핑하도록 했다. 쇼핑객이 동선을 따라 걸을 때 느끼는 편안함의 정도를 파악하고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을 분석했다.

이 업체는 실험 결과에 따라 하나의 매장을 대폭 변경했고 변경 이후 매장의 매출이 다른 매장에 비해 무려 21%나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결과에 고무된 기업은 실험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전 매장으로 확대, 적용했다.

◆기존 마케팅 조사의 한계 뛰어넘어

지금까지 뉴로 마케팅의 개념과 활용 분야에 대해 살펴봤다. 이제는 기업이 뉴로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주요 포인트를 보자.

첫째, 잠재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잠재의식은 과거의 모든 사건·사고나 생각 그리고 온갖 욕망의 저장 탱크다. 뉴로 마케팅은 ‘소비자의 선택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잠재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조사 방법론의 권위자인 제럴드 잘트먼 하버드대 교수도 인간의 사고는 95%가 무의식중에 일어나며 나머지 5%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둘째, 뉴로 리서치와 전통적 리서치 방법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 뉴로 마케팅은 기존 조사 방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법이다. 뇌 영상, 시선 추적 및 뇌파 조사, 설문 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 결과 등의 통합은 각각의 정보가 개별적으로 줄 수 없는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셋째, 뉴로 리서치를 위한 효과적인 조사 설계가 요구된다. 먼저, 뉴로 리서치에 적합한 주제 설정이 중요하다. 뉴로 리서치로 단순 선호도 조사를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규 매장의 고객 경험 개선 등과 같은 일반적인 조사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주제가 적합하다.

또한 ‘명확한’ 가설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뉴로 리서치의 데이터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알고자 하는 바가 명확할 때만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학연 네트워크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뉴로 마케팅은 마케팅을 중심으로 신경학·인지심리학 등의 종합적 지식이 요구된다. 학교·연구소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활용한다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