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업계에서는 ‘집토끼’ ‘산토끼’란 용어를 쓴다. 집토끼는 기존 소비자, 산토끼는 제품을 쓰지 않는 층을 말한다. 산토끼를 잡아야 시장이 급속히 커진다. 화장품과 패션은 40~50대 남성, 명품 시계는 여성, 홍삼은 20~30대가 산토끼에 해당한다. 이들이 소비를 시작하자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수제화 시장의 30대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젊은이는 스스로를 인정하기 위해, 40~50대는 남아 있는 인생 2막을 위해 자신에게 투자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딱딱한 사회 분위기와 고령화라는 요인이 소비시장에서 ‘자존감’이라는 키워드를 밀어올리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인 최모씨는 얼마 전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눈썹 반영구 시술을 받았다. 눈썹이 연한 그는 평소 인상이 유약해 보이는 것 같아 고민이었다. 성형외과는 아내가 추천했다. 그는 “임원 가운데 눈썹 반영구 시술을 받은 사람이 꽤 많다”며 “예전에는 미용 시술에 거부감이 컸지만 이제는 관리하는 남자가 더 멋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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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에서 ‘아재파탈’로

[커버스토리] 소비시장 새 키워드 '자존감'
중년 남성이 패션·뷰티 시장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엔 자신을 가꾸기보다 부모나 아내, 자식을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이 ‘아저씨’들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요즘 중년 남성들은 자신의 매력을 가꾸기 위해 기꺼이 투자한다. 부인이 골라준 옷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구입하고 필요에 따라선 성형 시술을 받는 등 노력한다.

‘아재파탈’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아저씨의 사투리인 ‘아재’와 프랑스어로 치명적 매력을 가진 남자를 뜻하는 ‘옴므파탈’을 합친 말로, 자신을 가꾸는 멋진 중년 남성을 뜻한다. 배우 김상중 차승원과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 콜린 퍼스(사진) 등이 대표적인 아재파탈로 불린다.

백화점·홈쇼핑의 ‘큰손’

현대백화점 경기 판교점 남성정장 갤럭시 매장에는 ‘갤럭시 IT라운지’가 있다. 슈트 등 패션 제품과 함께 갤럭시 기어 스마트폰 등 삼성전자의 전자기기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선 스마트 거울을 통해 가상으로 옷을 입어볼 수 있다. 옷을 고르면 어울리는 넥타이를 추천해준다. 갤럭시 슈트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40~50대 중년 남성의 방문을 늘리기 위해 체험형 매장으로 꾸몄다고 현대백화점 측은 설명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남성들이 IT 기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옷을 살 겸 흥미를 갖고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많다”고 했다. 현대백화점에선 2013년 27%였던 남성 방문객 비중이 지난해 30%를 넘어섰다. 방문객 3명 중 1명은 남성이라는 얘기다.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는 남성도 늘었다. CJ오쇼핑은 작년 20.8%였던 남성 매출 비중이 올해 22.2%로 높아졌다. 남성 소비자의 주문건수는 2년 새 21만6000건 증가했다. 올해 이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제품 다섯 가지 중 두 가지가 청바지와 슈트다. CJ오쇼핑 관계자는 “부인이 사준 대로 입기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직접 구입하는 남성 소비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전체 패션 소비자 중 40~50대 남성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남성복을 구매하는 소비자 중 40대 비중은 2008년 21.8%에서 지난해 28.6%로 늘었다. 50대 비중은 19.4%에서 21.2%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20대 소비자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성형외과 시술도 기꺼이

중년 남성들은 미용업계에서도 큰손으로 떠올랐다. 화장품을 직접 고르고 피부관리숍이나 피부과를 찾는다. 올 3분기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 보습 화장품을 구입한 50대 남성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4% 늘었다. 비씨카드 빅데이터 센터에 따르면 지난 4년간 40~50대 소비자의 피부 관련 카드 사용액은 35.3% 증가했다. 미용 관련 카드 사용액도 같은 기간 41.7% 늘었다.

비씨카드 측은 이마 주름과 처진 눈꺼풀을 개선하는 성형외과 시술 결제액도 많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필러와 보톡스 시술을 받는 40~50대 남성이 늘었다”며 “학부모 모임에 가기 전 시술을 받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