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 수능등급제는 경쟁 완화에 실패한 제도
교육부는 2008년 대학수학능력 평가에서 ‘수능등급제’를 시행했다. 과목별 9등급제는 이전부터 하던 것이었지만 이전에는 원점수나 표준점수를 같이 공개했다. 그런데 2008년 수능은 이런 점수를 공개하지 않고 오직 등급만을 공개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교육부는 수능등급제를 하면서 이 제도가 학생 간 지나친 경쟁을 완화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2점의 변화는 등급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교육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등급제를 적용했을 때 2004년 수능의 재수생 응시생 중에 인문계 수험생의 59%, 자연계 수험생의 55%가 전 해에 받은 것과 같은 등급이나 아래 등급을 받을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논단] 수능등급제는 경쟁 완화에 실패한 제도
그러나 이런 논의는 등급제 변화 효과의 한쪽 측면만 강조한 것이다. 물론 1~2점의 변화가 등급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낮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등급제는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낮은 확률로라도 1~2점의 변화가 등급을 변화시킬 수 있다. 작은 점수로 등급이 바뀌면 1~2점이 갖는 효과는 이전 제도에서보다 더 크다. 이 때문에 오히려 경쟁이 강화될 수도 있다. 시험제도가 경쟁 강도에 미치는 효과를 추산하기 위해선 한 학생이 일정한 노력을 투입해 시험 점수가 오를 확률과 시험 점수가 실제로 올랐을 때 학생에게 주어진 보상 변동의 폭을 곱하면 된다. 수능등급제는 시험 점수가 오를 확률은 감소시키지만 학생에게 주어지는 보상 변화의 폭은 증가시킨다.

저자들은 2008년에 도입된 수능등급제가 경쟁에 미치는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려고 시도했다. 점수가 오르거나 내렸을 때 등급이 변할 확률은 간발의 점수로 다음 등급으로 넘어갈 수 있었거나 한 단계 낮은 등급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기준점에 걸리는 학생의 분포도로부터 추정했다. 등급변화가 주는 보상의 차이는 이로 인한 진학 대학의 차이와 특정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의 평균 임금 차이로부터 추정했다. 저자들은 이를 통해 수능등급제 도입 전인 2006~2007년 수능과 2008년 수능에서 각각 치러진 국어와 영어 과목의 경쟁 수준을 비교했다. 그 결과 국어 과목에서 경쟁은 수능등급제 도입 뒤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으나 영어 과목에서의 경쟁은 오히려 강화된 것으로 보였다. 영어 과목에서는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의 차이가 국어 과목보다 더 적다는 뜻이다.

이 분석은 수능등급제 변화가 2008년 입시 한 번에만 적용돼 관측 횟수가 제한된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등급제를 도입한 목적이 경쟁 완화만은 아니기 때문에 제도 전체에 대한 평가도 아니다. 그러나 등급제가 의도와 다르게 경쟁을 완화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은 조그마한 논리적 주의만 기울이면 알 수 있다. 모든 제도의 설계에는 그만큼의 주의가 필요하다.

이삼호 < 고려대 교수·경제학 >

◆이 글은 미국 학술지 이코노믹 인쿼리(Economic Inquiry)에 게재된 논문 ‘참가자가 많은 토너먼트 경쟁에서의 노력 유인 측정(Measuring effort incentive in a tournament with many participants)(한치록·강창희·이삼호 공동연구)’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