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충정에 올해 입사한 로스쿨 5기 출신 새내기 변호사들. 엄윤령(뒷줄 왼쪽부터)·이기웅·김성율·이동진·박주홍·조광희 변호사. 김지선(앞줄 왼쪽부터)·이한아·우승준·남원철 변호사.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법무법인 충정에 올해 입사한 로스쿨 5기 출신 새내기 변호사들. 엄윤령(뒷줄 왼쪽부터)·이기웅·김성율·이동진·박주홍·조광희 변호사. 김지선(앞줄 왼쪽부터)·이한아·우승준·남원철 변호사.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올해로 설립 23주년을 맞은 법무법인 충정이 변화와 혁신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창립 당시의 초심으로 되돌아가자”는 결연한 의지다. 영미 글로벌 로펌에 대한 법률시장 개방과 로스쿨 변호사 양산 등 국내외 환경은 급변하는데 이에 대처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던 차였다. 충정이 그 물꼬를 터겠다고 총대를 멨다. ‘충정발(發) 변신’이 국내 법률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력한 리더십과 도전정신이 ‘비밀병기’

충정이 캐치프레이즈로 들고나온 것은 ‘젊은 충정’이다. 올 들어 각기 다른 배경(법학, 물리학, 경영학, 사회학, 정치학, 어문계열 학부전공)을 가진 로스쿨 3, 5기 출신 변호사 총 12명을 채용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새내기 로스쿨 변호사 채용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로고와 웹사이트를 새롭게 단장하는 등 충정의 브랜드 이미지를 확 바꿔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내부 설문조사를 통해 충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찾는 작업도 시작했다.

개인정보보호팀, 스포츠·엔터테인먼트팀, 환경팀, 기술·정보통신팀, 신탁사 정비사업팀 등 신생팀도 차례로 론칭을 하면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새바람의 진원지는 50년 법조경력의 황주명 회장이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한 지 7년 만인 올해 지휘봉을 다시 건네받아 노익장을 뽐내고 있다. 그는 “뭐든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며 젊은 변호사들에게 도전정신을 불어넣고 있다. 원칙과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변호사들도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한다. 투자도 늘리고 마케팅도 적극 나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해상·항공팀의 성우린 변호사(변호사시험 4회)는 황 회장의 경영 철학을 제대로 실천에 옮긴 모범 사례로 꼽힌다. 황 회장이 “전문 분야를 한번 살려보라”고 넌지시 얘기했더니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성 변호사는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항해학과)를 60기로 졸업하고 팬오션에서 항해사로 해상근무한 경력이 있다. 해운·조선업계의 장기 불황을 걱정하는 ‘청년 해운·조선·물류인 모임’을 만들어 지난 7월14일 창립총회와 출범식을 연 데 이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연구와 교류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09년 합병 이은 ‘제2의 혁신’

충정의 지난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몸부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충정도 남부럽지 않은 때가 있었다. 국내 최초 국제로펌인 김장리가 충정의 모태다. 김장리 설립자가 가족경영의 뜻을 내비치자 1993년 황 회장을 비롯해 목근수 박상일 대표 등 현 경영진들이 의기투합해 딴 살림을 차린 것이 충정이다. 김장리의 주력 분야였던 기업자문, M&A, 의료·제약 분야가 충정 업무의 중심이 된 이유다.

지금도 다우케미컬, 존슨앤드존슨, Saint-Gobain, DHL, JTI, 머크, 얀센, 노바티스, MSD 등 다국적 기업이 고객 비중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에 힘입어 10년 이상 장기고객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탄탄한 고객기반과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충정은 한때 국내 로펌 서열 5, 6위를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충정이 ‘성공신화’에 안주해 고객 확보와 몸집 불리기에 소홀한 사이 경쟁 대형 로펌들은 덩치를 급속히 키워갔고, 중형 로펌들도 치고 올라오면서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다.

충정은 문제의 해답을 합병에서 구했다. 2009년 법원·검찰 출신들이 중심인 된 법무법인 한승과 기업자문 중심의 충정이 시너지효과를 노리고 살림을 합친 것이다. 전문가 집단인 로펌 간 짝짓기는 흔치 않기 때문에 당시 법조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7년. 낡은 구체제를 깨고 새술을 담을 새부대를 마련하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충정만이 할 수 있는 혁신실험

충정 내부에서조차 이런 뼈를 깎는 변신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없진 않다. 하지만 황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혁신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똘똘 뭉쳐있다. 업계에서는 “충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충정은 중대형 규모다. 국내변호사 92명에 외국변호사(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 이탈리아)가 5명, 여기에 회계사 노무사 고문 등 기타 전문직 10명을 합쳐 총 100여명의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변호사만 600명인 김앤장이나 300명이 넘는 태평양 광장 세종 등에 비교하면 단출한 편이지만 ‘혁신실험’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