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을 찾아라.’

올해 삼성그룹 사장단이 가장 많이 공부한 주제는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면서 순간 방심하면 흐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래 기술을 한발 앞서 삼성의 새로운 먹거리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도 풀이된다.
'미래 기술'에 꽂힌 삼성…사장단도 AI·VR '열공'
자율주행부터 바이오까지

삼성 계열사 사장들은 매주 수요일 아침 8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모인다. 한 시간짜리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사장단협의회는 수요일마다 경영에 꼭 필요한 얘기를 해줄 각계 최고의 전문가를 부른다. 주제는 경영 경제 인문학부터 최신 국제이슈까지 다양하다.

한국경제신문이 올해 총 42차례 열린 삼성 사장단협의회 강연을 분석한 결과 4분의 1가량인 10차례에 걸쳐 미래 기술 관련 주제가 다뤄졌다. 자율주행차와 생체인식, VR 등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고 결정한 분야는 물론 딥러닝, 해킹, 무인기 등 대부분 신기술이 망라됐다.

지난 2월3일 선우명호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로부터 자율주행차 관련 강연을 들은 게 대표적이다. 한 참석자는 “올해 강의 중 사장들이 가장 집중했던 게 자율주행차 강의”라고 말했다. 그다음주엔 구윤모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무가 ‘VR 현황 및 기회’를 주제로 강연했다. 민간 무인기와 딥러닝, 해킹, 블록체인, 증강현실(AR), 생체인식, 바이오기술(BT) 등도 공부 주제였다. 지난 7일 강연의 주제는 ‘미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이 강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의 중요성과 미래 기술에 집중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기술 외에도 미래와 변화, 혁신 등에 대한 강연이 많았다. ‘인구 변동으로 예측한 10년 뒤 사회’(3월2일)와 같은 미래 예측부터 ‘변화에 저항하는 기업문화 어떻게 바꿀까’(6월8일)와 같은 혁신의 방법까지 다양한 문제가 다뤄졌다. 지난달 23일에는 《트렌드 코리아 2017》을 지은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를 불렀다.

가장 열심히 듣는 사람, 권오현

사장단협의회는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 시작된 ‘수요회’가 모체다. 초창기엔 고참 사장들로 구성된 의사결정 기구였지만 그룹이 커지고 참석자가 늘면서 사장들의 ‘정기모임’ 정도로 변화했다. 그러다 2008년 ‘삼성 특검’ 때 이건희 삼성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자 ‘사장단협의회’라는 상설기구로 바뀌어 그룹 경영을 논의하는 자리가 됐다. 2010년 이 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 강연 형태로 정착됐다.

강연은 통상 50분가량 이뤄진다. 이후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50여명의 참석자 중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으로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손꼽힌다. 권 부회장은 강의를 열심히 듣고 질문할 뿐 아니라 강의 직후 가장 먼저 뛰어나와 강사와 명함을 교환한다.

강연 트렌드는 매년 바뀐다.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에는 리더십 강연이 예년에 비해 늘었다. 지난해에는 인문학 강연이 부쩍 많아졌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