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에게 위기관리 전권을 줘 경기 하강과 대외 불안을 막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하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정국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전직 경제장관과 경제연구소장들은 11일 경제 위기 대응 체제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일제히 제안했다. 공백이 더 지속되면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확실한 경제사령탑을 세우고 위기관리 권한을 모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여·야·정 협의체에 대해서는 ‘정치에 의해 경제가 구속당할 수 있다’며 정치를 배제한 별도의 민관협의체 구성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탄핵안 가결 이후] "재정 확 풀어 소비부터 살려라…추경·감세 등 특단대책 총동원"
◆부총리에게 전권 맡겨야

잇따른 내우외환 속에 경제는 위기로 치닫고 있지만 정치 리스크로 한 달 넘도록 방치돼왔다. 경제사령탑마저 여전히 불확실해 당장 시급한 내년 경제정책 방향조차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무엇보다 경제부총리 선임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짓고 전권을 맡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제언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2004년엔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가 ‘경제는 내가 책임진다’며 위기관리에 나섰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때보다 안 좋은데 경제사령탑은 어정쩡한 상황”이라며 “여야 합의로 이 문제부터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사령탑을 세우고 나면 경제에 관한 한 누구도 간섭하지 말고 오로지 부총리가 인사는 물론 조직 관리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밀어붙이도록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지금 국내 경제는 활력을 잃고 역동성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제부총리가 중심을 잡고 나라 안팎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국회·정부의 정책협의체에 대해선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 전직 관료는 “정치권이 개입하면 오히려 위기 대응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차라리 민관 합동 협의체를 구성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적극적 재정 역할 필요

경기 급랭을 막기 위한 단기 부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등으로 통화정책은 제약이 있는 만큼 재정을 풀어 단기 대응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구조조정과 일자리, 노후 사회간접자본(SOC)의 안전 관리 강화 등에 대한 재원을 마련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며 “내년 2월부터 임시국회를 열어 추경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소비를 살리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쏟아내야 한다”며 “2017년 예산이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조기 집행될 수 있도록 연말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미국과 중국 간 충돌이 벌어지면 우리 경제는 큰 위험이 닥칠 수 있다”며 “경기 부양 못지않게 대외 위험 관리가 중요한 만큼 일본 미국 등과 통화 스와프 협약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개혁입법 통과시켜야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은 “정치는 광장으로 해결되지만 경제는 광장에서 되는 게 아니다”며 “정치와 상관없이 경제는 돌아가도록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정치권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 놓고 면박이나 주는데 투자할 마음이 생기겠느냐”며 “정치권이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준경 원장은 “국회는 노동과 구조개혁 관련 법안 등을 조속히 통과시켜 경기활성화를 지원한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열/김재후/김순신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