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사 믿어도 됩니까.”

요즘 국내 해운사들은 해외 수출입 화주(貨主)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발생한 물류대란의 여파는 100일이 지나서도 계속되고 있다. 외국 선사 사이에선 ‘한진해운 사태 못 봤나. 한국 해운사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식의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진해운이 보유한 전문 인력 네트워크까지 무너지면서 한국 해운업의 경쟁력 기반이 위태롭다는 분석이 나온다.

◆쉽지 않은 이미지 개선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떨어진 국가 이미지 회복을 첫손에 꼽는다. 계약과 운임료 협상 등 기본 실적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일부 외국 화주는 떨어진 한국 해운사 이미지를 약점으로 삼아 운임료를 깎으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업계 원로인 정남돈 전 세양선박 대표는 “한국 해운업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 전 세계에서 망신을 당하고 있다”며 “국가 전략 차원에서 떨어진 한국 해운업의 위상과 신뢰도를 바로잡지 않고는 다시 성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해운사 직원은 “당장 화주들이 한국 해운사를 꺼리는데 어떻게 실적을 올릴 수 있겠느냐”며 “이미지가 회복되지 않으면 앞으로 일감도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한국 해운사에 맡기던 물량이 30이었다면 이 중 10 정도만 한국 해운사에 맡기고 나머지는 외국 선사에 분배하는 화주도 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경쟁력이 좋은 선사에 맡기려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한진해운에 맡기던 물동량을 현대상선, 머스크(덴마크), MSC(스위스) 등 여러 선사로 쪼개 계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상 물동량의 40% 이상을 한진해운을 통해 처리했다.
'못믿을 한국 선사' 추락한 이미지부터 바꾸자
◆무너지는 인적 네트워크 걱정도

인적 네트워크가 무너지는 것도 문제다. 한진해운 직원 1300여명은 해고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다른 중소선사보다 해운업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적자원이 많다”며 “사실상 한국 해운업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적 네트워크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진해운 직원들은 내년 2월 회사 청산이 공식화되는 시점에 모두 해고될 예정이다. 일부 직원은 영업 양수도 방식으로 자산 매각이 이뤄지는 데 따라 SM(삼라마이더스)그룹, 현대상선 등으로 가게 된다. SM 측은 육상직원 293명을 고용 승계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직원은 일자리를 잃을 전망이다. 국내 해운업의 선단 규모가 감소한 상황에서 필요 인력도 줄어들어서다. 장승환 한진해운 육상노조위원장은 “노하우가 있는 인력도 자산 중 하나인데 공중분해되고 있다”며 “해운업 경쟁력에도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부분은 해결이 시급하지만 당장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게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이기환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 해운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기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미지 회복이나 인적 네트워크 재구축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만 지금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완전히 망가진다”며 “정부와 해운업계, 금융업계 등 각 분야에서 협력하면서 산업 기반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