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정신 강조…창업자 경영철학 "사자를 물리치는 배고픈 늑대여야"

중국 화웨이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불과 5년 만에 일약 3위로 부상한 것은 돌격대를 연상시키는 조직문화에 힘입은 것이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4일 보도했다.

화웨이는 수백명의 신입사원을 선전의 연수원에 보내 강도 높은 교육을 한다.

신입사원들은 아침 6시 30분에 일제히 기숙사에서 나와 단체 구보에 나선다.

신병훈련소와 다른 점은 인민해방군 엔지니어 출신으로 1987년 이 회사를 창업한 런정페이(任正非·72) 회장의 경영철학을 연수원에서 집중적으로 학습한다는 점이다.

직원들이 사자를 물리치는 배고픈 늑대여야 한다는 말에 그의 경영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화웨이는 직원들에게 휴가와 특근수당을 포기하고 회사를 위해 몸을 바쳐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요구한다.

회사 관계자들은 희생정신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궈핑(郭平) 화웨이 부회장은 "공동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창업자"라고 말하면서 미국인들이 건국의 아버지들을 존중하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런 회장을 회사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공언할 정도다.

화웨이의 조직문화는 중국 기업으로서는 유별난 축에 속한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당시 글로벌 기업들은 현지 직원을 앞다퉈 철수시켰지만 화웨이 직원들은 잔류를 택했고 나중에 특별 보너스를 받았다.

신입사원들은 1년이 지나면 휴가와 특근수당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각서에 서명한다.

한 엔지니어는 4년 전에 각서에 서명했고 그 보상으로 주식을 배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비상장기업으로 경영진과 직원들이 전체 주식을 나눠 갖고 있다.

런 회장의 영향력은 회사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사내 인트라넷에 그가 글을 올리면 직원들이 이를 꼼꼼히 읽는다.

일부 간부들은 직원들에게 퀴즈를 내 숙지 여부를 알아보기도 한다.

화웨이가 10여년 전 처음으로 해외 파견을 시작했을 당시에 이 회사의 직원들이 겪은 경험들을 묶어 펴낸 책에서도 희생을 요구하는 조직문화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시베리아에 파견된 화웨이의 노동자들이 혹한을 무릅쓰고 송신탑을 건설했다던가, 독일에 파견된 노동자들이 열악한 기숙사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는 내용이 소개돼 있다.

선전의 엔지니어들이 책상 밑에 매트리스를 깔고 철야를 했다는 회고담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런 회장이 글로벌 광고를 위해 선택했다는 발레리나 사진에서도 그가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발레리나의 한쪽 발은 우아한 발레화를 신고 있었지만 다른 쪽 발은 상처투성이의 맨발이었다.

화웨이는 향후 5년 안으로 세계 1위의 스마트폰 업체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고 런 회장 본인도 아직은 일상업무에서 손을 뗄 기미가 없다.

애널리스트들은 그러나 후계 구도에 대해서 벌써 여러 가지 관측을 내놓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승계가 이뤄지더라도 런 회장 같은 위상을 갖기는 힘들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현재 부회장은 궈핑을 포함해 3명이며 이들이 6개월마다 교대로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런 회장은 중요한 경영사안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단 한 번도 이를 행사한 적이 없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베이징의 컨설팅 회사 BDA 차이나의 던던 클라크 회장은 후계 구도와 관련해 "그 누가 (런정페이 회장과) 동등한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런 회장의 딸은 현재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로 일하고 있고 아들은 자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가족 중에서 차기 지도자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화웨이 임원들은 후계 구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순번 CEO 제도가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다고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화웨이는 최근에 와서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종전보다 덜 경직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독일 주재원들에게 임차료를 지원해 아파트에서 단독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했고, 선전에서는 여전히 책상 밑에 매트리스가 놓여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지만 철야가 아닌, 점심식사 후의 짧은 수면을 취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런 회장은 우간다, 말라위처럼 인프라와 근무여건이 열악한 개도국에 파견된 노동자들을 자주 찾아보곤 한다.

궈핑 부회장에 따르면 런 회장은 해외 주재원들의 근무여건 개선에 더 많은 예산을 할당할 것도 당부했다고 한다.

화웨이는 개선책의 일환으로 험지에서 운영하는 직원용 식당에 반드시 중국인 요리사를 배치하고 있다.

런 회장이 "잘 먹여야 집 생각이 안 나는 법"이라고 훈시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