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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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혜원 기자 ] 폭스바겐 게이트, 혹은 디젤 게이트 이후 1년여가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디젤자동차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렸다. 디젤차 퇴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후 디젤차량들은 곧 서울 시내 운행을 할 수 없게 된다.

내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수도권에서 2005년 이전 생산된 2.5t 이상 경유차(유럽연합 배출가스 기준 유로3) 운행제한 조치가 단계적으로 실시되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달부터 2002년 이전 등록된 노후 경유차는 서울 시내 도로를 달릴 수 없다.

일부 노후 디젤차 소유주들은 폐차 후 새 차 구매 의사를 밝혔다. 정부도 거들었다. 노후 경유차를 폐차하고 새 승용차를 구매하면 세제 지원을 해준다. 개별소비세를 대당 100만원 한도에서 70%(5.0%→1.5%) 깎아주는 방안이다. 이 안은 현재 국회 조세소위에서 의결됐다. 정부 측은 시행일을 공포 전으로 소급한 이달 5일로 잡았다.

5개월 동안 미뤄진 법안 통과에 탄력을 받으면서 지지부진한 노후 경유차 교체 수요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도 디젤 차주들은 혼란스럽다.

2004년식 쏘렌토 디젤 모델을 보유한 차주 박모씨는 "차 살때는 이런 말이 없더니"라는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당시엔 문제 없던 차량이 배출가스 문제가 부각되면서 당장 폐기해야 할 차로 전락했다"며 "지금 구입하는 차도 나중에 또 새로운 환경 이슈에 따라 문제가 되지 말란 법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의 말처럼 1년 전만 해도 디젤차는 '클린디젤', 즉 친환경차로 인식됐다. 높은 연비, 저렴한 연료 등 경제적 이유 못지않게 친환경성에 주목해 차를 구매한 소비자도 있었다. 2009년 디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구매한 김모씨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어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된다고 해 디젤 엔진을 선택한 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미세먼지 문제가 집중 부각되면서 디젤차가 직격탄을 맞았지만, 디젤이 환경문제의 주범인 양 매도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세먼지만 환경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문제도 있다.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경우 디젤차가 가솔린차보다 20~30% 낮다는 점은 잊힌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디젤차 규제 정책이 자칫 가솔린차 확대라는 '풍선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데 있다. 국내 시장의 친환경차 구매 수요는 아직 낮은 편이다.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이 미비한 탓이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국내 전기차 등록대수는 8518대였다. 전체 등록 차량의 0.04%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디젤차 제한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가솔린차가 된다.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로 발생한 신차 수요가 가솔린차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전망이다. 정부 정책대로라면 노후 경유차 폐차 후 신규 승용차 구입시 차종에 상관없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후 경유차를 빨리 폐차시켜 미세먼지를 줄여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그렇다. 나쁜 취지의 정부 정책은 없다. 하지만 미세먼지 문제에만 매몰되면 또다른 문제를 놓칠 수 있다.

온실가스가 이슈화되면 그땐 가솔린차를 규제할 것인가? 앞으로 새로운 환경 문제가 생겨난다면? 친환경차 수요 확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부재한 정책은 또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