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침체의 터널을 좀체 벗어나지 못할 것 같던 수출이 예상과 달리 반등세를 타고 있다. 산업 생산과 투자, 소비 등 실물 경기지표가 둔화하고 대외적으론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이 강화되는 가운데 나온 다소 뜻밖의 결과다.

일각에선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 호조에 한국도 올라타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제기된다. 마침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8년 만에 감산에 합의해 수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올 상반기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던 세계 교역도 바닥을 찍고 점차 회복될 것이란 전망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13대 품목 중 11개 수출 증가

[깜짝 반등한 수출] 수출 '침체 터널' 벗어나나…13대 품목 중 11개 일제히 증가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지난달 수출액이 455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11월 수출액 규모는 지난해 7월 이후 16개월 만의 최대치다. 역대 최장 기간인 20개월 동안 마이너스 행진을 지속하던 수출은 지난 8월 플러스로 전환했지만 ‘반짝 반등’에 그쳤다. 9~10월 다시 감소세를 보이면서 수출 침체가 고착화될 것이란 불안이 커졌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3개월 만에 다시 플러스로 돌아섰다.

13대 주요 품목 가운데 선박과 무선통신기기를 제외한 11개 품목의 수출이 늘었다. 11개 이상 품목의 수출이 동시에 증가한 것은 31개월 만이다. 석유화학 수출은 올 들어 8월을 제외하고 계속 감소했지만 지난달에는 20%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은 9월 2.6% 감소에서 10월 1.7% 증가로 돌아서더니 지난달에는 11.6% 늘었다.

자동차 수출 역시 업계 파업과 해외공장 생산 증가로 올 들어 줄곧 감소했지만 지난달 1.5% 증가했다. 2015년 6월 이후 17개월 만의 증가세 전환이다.

다만 선박은 해양플랜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총 32척을 인도해 35억달러의 실적을 올렸지만 지난해 같은 달 수출액(56억달러)이 워낙 커 36.8% 감소했다. 무선통신기기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단종 여파가 지속돼 수출이 17.9% 줄었다.

채희봉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은 제품 단가 상승에다 경쟁력 우위가 지속되고 있다”며 “자동차와 석유화학은 각각 파업 종료, 유가 상승을 배경으로 수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무선통신기기 수출은 갤럭시S8 출시가 예상되는 내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좋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

지역별로도 줄곧 감소세를 보이던 대(對)중국 수출이 올해 최고액인 117억달러를 기록하며 17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국(3.9%), 일본(12.6%), 인도(12.6%) 등으로의 수출도 증가세로 전환됐고, 베트남(38.5%), 아세안(22.0%), 중동(11.1%) 수출도 증가세를 지속했다.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 등으로 그동안 상대적으로 침체를 보인 신흥국 경기가 회복세를 타면 수출에 청신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유가 상승을 통해 중동 경기가 회복되면 그동안 멈춰섰던 인프라 투자가 살아나 해외건설 수주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유가가 오르면 중남미 중동 러시아 등에 대한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중국의 저성장 지속 등으로 수출을 낙관적으로만 볼 순 없다는 시각도 있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은 “통상환경이 녹록지 않아 수출 증가가 지속될 것으로 예단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태훈/오형주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