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영진 사익추구 미국의 9배…법인세 인하 효과 28% 감소시켜"

법인세 인상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본적으로 법인세율을 인하하면 기업 투자 역시 늘어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실증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 경영진이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고 사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이런 법인세 인하 효과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법인세 인상에는 신중하되 기업경영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 역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남창우 연구위원은 28일 KDI 정책포럼에 실린 '법인세율 변화가 기업투자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법인세율 인하에도 기업투자가 부진하므로 세율을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함에 따라 법인세율이 기업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엄밀하게 분석한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 "세율인하는 효과…과세표준 상향은 글쎄"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2009년 기업소득 2억원 초과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25%에서 22% 낮췄다.

이어 2012년에는 22% 최고세율에 대한 과세표준을 2억원 초과에서 200억원 초과로 높였다.

이에 따라 과세표준 2억원 초과에서 200억원 이하 구간의 세율은 22%에서 20%로 낮아졌다.

보고서는 기업의 투자 등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은 법인세율뿐 아니라 재무상태 및 투자 불확실성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기업 특성을 가능한 한 통제한 뒤 법인세율 변화가 투자에 미치는 효과를 추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2002∼2014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249개 비금융기관의 개별 재무제표를 이용해 법인세 평균실효세율이 기업 투자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기업의 투자율은 총자산 대비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율로 정의했다.

분석 결과 법인세 평균실효세율이 1%포인트 인하되면 투자율은 0.2%포인트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성자산 비중이 1%포인트 낮아져도 투자율은 0.34%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보고서는 "종합해보면 기업의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는 기업의 현금보유 및 현금흐름, 매출의 성장성, 법인소득에 대한 세금부과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이 실증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만 법인세와 관련해 세율 인하가 과세표준을 올리는 것보다 투자 확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25%였던 2005∼2008년 평균실효세율이 1%포인트 인하되면 투자율은 0.31%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과세표준기준을 2억원 초과에서 200억원 초과로 올린 2012년 이후 투자율 증가 효과는 0.06%포인트에 그쳤다.

보고서는 "정부가 과세표준을 높인다고 해서 반드시 기업이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문제는 기업경영진…사익추구로 법인세 인하효과 저해"

문제는 한국의 경우 기업 경영진의 사익추구 행위가 심해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최근 국내 기업 경영진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거나 불법적으로 회사자금을 유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서 "경영진의 사적이익 추구가 존재하면 투자에 대한 왜곡된 결정이 발생해 기업조세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A기업은 부실이 심화되면서 일반주주들은 4년 동안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지만 경영진인 B씨는 성과보수 및 퇴직금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챙겼다.

C기업의 주주이자 경영진인 D씨는 기업의 현금성자산 수백억원을 차명주식과 해외 특수회사 등을 통해 유용했다.

보고서는 구조모형을 통해 경영진이 수취하는 사적이익의 비율을 추정한 결과 한국 경영진은 영업이익 및 현금성자산의 0.09%를 사적으로 이용, 미국(0.01%) 보다 9배나 높았다.

이는 한국 경영진에 대한 내외부 감시·감독 장치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거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처럼 경영진의 사적이익 추구가 존재하면 법인세율 인하 효과는 2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세 평균실효세율이 영구적으로 1%포인트 인하될 때 기업 투자율은 단기적으로 0.29%포인트 증가하지만 경영진의 사익추구가 가능한 환경에는 0.21%포인트 상승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가용자금의 일부를 경영진이 사익을 위해 현금성자산으로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경영진 사익추구가 존재하는 기업환경에서 법인세율이 인상되면 기업투자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법인세율 인상 시 기업은 현금성자산을 이용해 투자 감소폭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경영진이 현금성자산 등에서 사익을 편취할 유인이 있으면 현금성자산 대신 오히려 투자를 더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따라서 정부는 법인세율 인상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경영에 대한 내외부 감시·감독기능을 강화해 경영진의 사적유인을 통제하고 고용 및 투자 등에 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사회이사후보추천위원회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 행정적·사법적 제재를 받은 사람의 경영진 선임 제한, 외부 기업감시에 대한 시장규율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종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pdhis9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