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80명 시계장인이 한 제품당 20~30개만 만들어요"
200~300년 된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사이에서 주목받는 신진 브랜드가 있다. ‘로저드뷔’다. 1995년 로저 드뷔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시계다. 로저 드뷔는 파텍 필립, 론진 등에서 40여년간 시계를 만들어온 노하우를 자신의 브랜드에 쏟아부었다. 80여명의 시계 장인이 1년에 4000개의 시계만 수작업으로 만든다. 독특한 스켈레톤(속이 들여다보이는 개방형 시계) 시계가 대표 제품이다. 미국 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가 즐겨 차면서 입소문이 났다. 로저드뷔는 추 선수에게 헌정하는 한정판 시계를 개발했다. 한국에서 이 시계를 공개하기 위해 방한한 장 마르크 폰트로이 최고경영자(CEO)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의 로저드뷔 매장에서 만났다.

▶추신수 선수에게 헌정하는 시계를 개발한 이유가 궁금하다.

[명품의 향기] "80명 시계장인이 한 제품당 20~30개만 만들어요"
“추 선수는 열정적인 데다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브랜드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혁신해 나가는 것도 닮았다. 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고, 한국 등 성장하는 시장에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시계의 특징은 무엇인가.

“블랙 티타늄 등 제품으로 만들기 까다로운 신소재를 많이 썼다. 클래식 디자인을 유지하되 플라잉 무브먼트(동력장치), 스켈레톤 등 기술력을 총동원했다. 겉모습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만들었다. 모든 부품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면 제네바실(제네바에서 생산된 최고 품질의 시계에 주는 인증)을 취득하기가 매우 어렵다. 인증을 받는 데 1년가량 걸렸다. 기존 제품들보다 더 큰 사이즈로 내놨고 스포티한 러버 스트랩을 달았다. 스포티하지만 고급스러운 클래식 워치의 장점은 유지했다.”

▶로저드뷔는 남성적 이미지가 강하다.

“스켈레톤 무브먼트, 큰 다이얼 등이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올초 스위스에서 열린 SIHH(고급시계박람회)에서 여성 시계 ‘벨벳’ 제품을 대거 내놓았다. 시계 시장에서 여성이 중요한 소비자가 됐다. 매출의 30%가량이 여성 제품이다. 더 혁신적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여성 시계를 늘려갈 계획이다.”

▶로저드뷔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하이엔드 워치 메이커 중 최근 3년 동안 우리 브랜드의 성장률이 가장 높다. 클래식 워치 수요가 젊은 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시계 디자인과 소재, 그래픽 등 모든 면에서 혁신적 제품을 찾는다. 우리 브랜드만의 독특한 디자인, 혁신적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모든 시계를 한정판처럼 소량만 제작하는 것도 희소성 높은 제품으로 승부를 걸기 위해서다.”

▶CEO로 취임한 뒤 지난 4년여 동안 어떤 점에 주력했나.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만드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선보여야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간다. 단기간에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50년, 100년이 지나도 지속가능한 회사로, 오래가는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작업이다.”

▶그래도 CEO는 매출 증가 등에 신경 써야 하지 않나.

“물론이다. 경영방침상 수치를 공개할 순 없지만 스위스 클래식 워치 메이커들 사이에서 로저드뷔는 가장 빨리 성장하는 브랜드라고 얘기할 수 있다. 목표치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매장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으면서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제품당 많아야 20~30개만 제작한다. 희소성 높은 제품, 브랜드를 상징하는 독특한 디자인과 혁신적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성장이 가능하다.”

▶아시아 등 성장 속도가 빠른 시장에서 어떤 판매 전략을 세웠나.

“로저드뷔는 모든 나라, 모든 대표 도시에 매장을 내지는 않는다. 우리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많은 도시에만 낸다. 유동인구가 많아야겠지만 관광객, 현지 쇼핑객들의 구매 욕구가 많아야 매장을 낸다. 서울을 포함해 한국에 6개 매장을 운영한다는 건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매출에서 한국과 아시아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

“아시아가 40%가량을 차지한다. 그중 일본이 10%, 한국이 5%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다른 관광지에 가서 사는 수요, 중국인이 한국 시장에 와서 사가는 수요를 생각하면 한국의 중요성은 5%보다 훨씬 크다.”

▶경쟁이 치열한 명품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마디로 차별화다. 여기 에비뉴엘만 하더라도 알 만한 브랜드 10~20개가 한데 모여있다. 이 중에서 눈에 띄어야만 한다. 시계, 주얼리든 패션이든 독창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혁신하고 투자한다. 어느 브랜드와 비교해도 으뜸이 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생존 가능하다.”

▶좀 더 가격대를 낮춘 대중적 시계도 중요하다.

“그렇다. 그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잘하는 건 혁신적인 하이엔드급 시계다. 세라믹, 블랙 티타늄 등 혁신적 소재를 쓰는 데다 스켈레톤 무브먼트 등 부품의 가격도 비싸다. 대중적 소재를 쓰고 가격대를 낮추면서 기술력을 보여준다는 건 어렵다. 그러나 노력하고 있다. 스켈레톤 무브먼트를 쓰지만 부품 수를 줄인 엔트리급 제품은 5만 스위스프랑(약 6000만원)부터 있다.”

▶스마트워치가 클래식워치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 스마트워치는 끊임없이 신제품이 나오는 정보기술(IT) 기기 같은 거다. 계속 새 제품이 나오는 소모품과 비슷하다. 정확한 시간을 보려면 휴대폰이 손목시계보다 낫지 않나. 명품 시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기능보다는 차별화된 작품을 갖고 싶어하는 거다.”

▶CEO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

“추 선수 헌정 시계를 만든 것도,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CEO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좀 더 창의적인 분위기에서 혁신을 꾀할 수 있는 회사, 감성적 마케팅으로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워치 메이커, 100~200년 갈 수 있는 시계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