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산업이 '최순실 블랙홀'에 빠졌다.

지난해부터 특허를 둘러싼 소모적인 경쟁과 논란이 계속되더니 이번에는 '최순실 게이트'에 얽혀들면서 대혼란에 빠진 것이다.

'비선 실세'의 입김으로 재벌기업이 혜택을 본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해당 기업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관세청은 예정대로 내달 서울 시내면세점을 추가 선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무산 소문이 무성한 상황이다.

5년 주기 특허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는 관세법 개정안 통과도 여의치 않다.

◇ 면세점 업계 '총체적 난국'

면세점 업계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월드타워점과 워커힐면세점 부활을 꿈꾸던 롯데와 SK는 탄핵 정국에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다 된 밥에 재 뿌린 꼴'이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만약 대가성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두 기업은 면세점 특허 재획득 실패는 물론, 그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다른 기업들도 이번 파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시내면세점 신규특허 신청 기업 5곳 중 롯데와 SK 외에 신라와 신세계면세점도 그룹 차원에서 미르나 K스포츠재단 모금에 참여했다.

신세계와 신라면세점은 최순실 씨 관련 의혹을 받은 화장품이 입점했다는 이유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따낸 한화나 두산에까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사태와 맞물려 시내면세점 사업자 추가 선정이 중단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업계에서는 나오고 있다.

재벌 총수들의 대통령 독대와 모금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자를 선정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권 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신규 시내면세점 추진이 재벌들의 기금 출연 대가가 아닌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신규 사업권 선정보다 잘못된 제도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 내부 의견도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지금 상황에서 사업자가 선정되면 다른 후폭풍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정치적인 문제로 사업자 선정이 미뤄지면 오히려 불확실성이 더 확대된다며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관세청은 예정대로 다음 달 신규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며 프레젠테이션 1주일 전쯤 날짜를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참가업체들은 혼란 속에서 언제일지 모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 '5년 시한부' 제도 개선 불투명

또 다른 불안요소는 면세점 특허 기간 연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롯데와 SK가 특허 재승인에 실패하면서 고용 불안 등 각종 부작용이 부각되자 '5년 주기' 특허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당국은 안정적인 면세점 경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특허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원칙적으로 특허갱신을 허용하기로 했다.

당시 업계는 '5년 특허' 시대가 끝나면 투자와 고용도 활성화될 것이라며 반겼다.

그러나 당국이 목표로 했던 올 하반기 개정안 통과는 사실상 무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5일 조세소위를 열어 정부가 제출한 관세법 개정안을 당장 처리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을 처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소위 위원장인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은 "여러 우려가 제기된 상황에서 개정안에 대해 점검할 사안이 많은 만큼 충분히 시간을 두고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순실 씨 입김이 면세점에까지 미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신규 선정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며 "특허 기간을 연장하는 개정안을 당장 처리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고, 신규 면세점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특허 기간 연장이 불발되면 면세점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특허 문제는 제쳐놓고라도 특허 기간 연장이 처리되지 않고 있어 난감하다"며 "당연히 10년 주기로 바뀐다고 믿고 있었는데 정치적 변수에 다시 '5년 주기'가 굳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