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8년 시행을 목표로 지난 7일 입법예고한 개인연금법 제정안을 놓고 은행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인연금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투자일임형 연금상품을 은행은 취급할 수 없어서다.

300조원 규모의 개인연금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은행권은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차원에서 은행도 투자일임형 연금상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300조 개인연금 시장 놓치나…은행 '전전긍긍'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개인연금법 제정으로 은행권이 받게 될 불이익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이달 말께 금융당국에 전달하기로 하고 업계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금융업권별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조정이 쉽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출시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서만 은행에 투자일임 업무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금융위가 입법예고한 개인연금법 제정안은 조세법과 은행법,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등에 흩어져 있는 개인연금 관련 법규를 한데 모았다. 주요 내용은 투자일임형 연금상품 도입과 복수의 개인연금을 한 곳에서 관리할 수 있는 개인연금계좌 도입, 연금상품 계약철회권 부여 등을 통한 소비자 보호 등이다.

은행권이 반대하는 조항은 금융회사가 가입자의 위임을 받아 개별 투자성향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로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일임형 연금상품 도입이다. 금융당국은 이 상품이 도입되면 개인연금 상품의 운용수익률이 높아져 노후 준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연금 상품은 돈을 맡아 굴리는 금융회사에 따라 연금저축보험(생명·손해보험사), 연금저축신탁(은행), 연금저축펀드(자산운용회사)로 나뉜다. 여기에 증권회사의 종합자산관리 상품인 랩어카운트처럼 금융회사가 폭넓은 재량권을 갖고 가입자의 자산을 굴리는 투자일임형 연금상품을 추가했다.

하지만 개인연금법이 시행돼도 은행들은 투자일임형 연금상품을 취급할 수 없다. 증권사, 보험사와 달리 ISA 계좌가 아닌 일반 투자일임업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ISA 상품만 보더라도 증권사의 모델 포트폴리오는 공격적인 반면 은행은 안정적”이라며 “개인연금 활성화를 위해선 투자일임형 연금에도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행은 이와 별개로 정부 방침에 따라 2018년부터 원리금 보장형 연금저축신탁도 판매할 수 없다. 정부는 원리금 보장형 연금저축신탁의 예·적금 상품 비중이 큰 탓에 저금리 상황에선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개인연금 시장에서 이 상품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방침에 대해서도 목표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안정적인 자산 운용을 원하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빼앗아갔다는 비판이 나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을 개인연금 시장에서 사실상 배제하는 것은 소비자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