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가 아니라 천만다행입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14일 하만을 사들인다는 소식에 국내 투자은행(IB)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올해 국내 인수합병(M&A) 거래 부진으로 가뜩이나 ‘눈칫밥’을 먹는 상황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크로스 보더(국경 간) M&A를 경쟁사에 내준 것으로 드러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인수 자문사가 미국 부티크(소형) IB인 에버코어란 게 확인되자 국내 IB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에버코어는 한국에 사무실이 없다.

에버코어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 14억8000만달러로, 부티크 IB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지난해 484개 M&A 자문을 맡아 수수료로 8억6500만달러(약 1조원)를 벌어들였다. 최근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태양광 패널업체 솔라시티 인수 자문을 맡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에버코어를 선정한 것은 정보기술(IT) 분야에서의 M&A 경험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한국에 사무실이 없는 에버코어를 활용하면 보안 유지에 유리할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하만은 뉴욕증시 상장사여서 비밀이 새나가면 거래가 무산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대형 해외 M&A 거래에 한국에 사무실이 있는 증권사들을 배제한 데 대한 불만도 나온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 등 돈은 안 되고 어려운 ‘숙제’만 국내 지점에 할당하고 정작 돈이 되는 해외 M&A 일감은 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프린터 사업부를 미국 HP에 10억5000만달러에 팔 때도 국내 재무 자문을 활용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M&A에서 하만 측 매각 자문은 JP모간체이스와 라자드가 맡았다.

유창재/정소람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