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각형 합병방식 선택…하만은 존속회사로 남아 특허권 등 유지
최근 10년 M&A 26건 중 올해만 6건…'반도체·가전→AI·스마트카' 진화
삼성 미래차 글로벌 선두 도약땐 안드로이드·유튜브 합병효과 뺨칠 수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등기이사 등판' 이후 첫 작품으로 내놓은 세계 1위 전장(電裝) 기업 하만(HARMAN) 인수가 향후 삼성의 미래사업 전략에서 '신의 한 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증권가 평가가나오고 있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가 몰고 온 브랜드 신인도 추락과 실적 악화의 질곡에서 벗어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스마트카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활약할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15일 IT전자업계와 증권가에 따르면 80억달러(약 9조3천700억원)의 빅딜을 성사시킨 삼성의 이번 인수·합병(M&A)은 미국 최대 IT기업 구글이 지난 10여 년간 M&A를 통해 이룩한 신화를 재현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 5천만 불 안드로이드로 스마트폰 80% 장악한 구글
돈 해리슨 구글 부사장은 "M&A야말로 구글이 이룬 성공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구글의 역사가 곧 IT업계 M&A의 역사라는 말도 있다.

구글의 가장 대표적인 M&A가 2005년 안드로이드 인수다.

구글이 M&A 몸값으로는 매우 저렴한 5천만 달러(590억 원)를 들여 사들인 안드로이드는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스마트폰 운영체제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통해 지난 8년간 거둬들인 수입만 30조 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구글이 인수한 유튜브는 M&A 신화의 2탄이었다.

사업성이 불투명해 보이던 비디오 플랫폼 회사에 16억5천만 달러를 투자할 때까지만 해도 투자업계를 의아하게 했지만, 유튜브는 지난해에만 6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바둑대결을 벌인 알파고의 제작사로 널리 알려진 딥마인드는 구글이 2014년 5억 달러에 인수한 인공지능 기업이다.

구글X 소속의 자회사로 편입된 보스턴 다이내믹스(휴머노이드형 로봇)나 프로젝트 룬(와이파이), 타이탄 에어로스페이스(드론) 등 근래 인수된 후발기업들도 구글의 미래성장 동력으로 착착 자리잡고 있다.

◇ 삼성, 현지거점 찾던 M&A에서 신산업 생태계의 큰손으로
삼성전자의 최근 10년간 M&A 추이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현지 생산거점을 마련하거나 '약한 고리'로 판단되는 일부 기술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이 주류였다.

2009년 유럽내 생활가전 거점을 확보하고자 폴란드 가전업체 아미카를 인수한 것과 2007년 삼성이 약한 비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위해 이스라엘의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트랜스칩을 사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에는 의료기기·헬스케어 등에 관심을 보였다.

2011년 의료기기 업체 메디슨을 인수한 것과 미국의 심장질환 진단 솔루션 업체 넥서스 지분 인수(2011년), 미국 이동형 CT(컴퓨터 단층촬영) 장비전문업체 뉴로로지카 인수(2013년) 등이다.

삼성의 M&A가 실리콘밸리를 직접 겨냥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기업 스마트싱스를 인수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스마트싱스는 인수 후에도 독립적으로 운영됐다.

이번에 인수된 하만이 현 경영진에 의해 그대로 운영될 예정인 점과 같은 원리다.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CSO·사장)는 "지난해 1천 개의 실리콘밸리 기업을 서칭(검색)했고, 그중 54개 회사에 크고 작은 투자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들어 놀라울 정도로 왕성한 M&A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26건의 주요 기업 M&A(지분투자 포함)를 기록했는데 그중 올해 들어서만 23%인 6건을 성사시켰다.

삼성은 올해들어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조이언트와 캐나다 디지털광고 스타트업 애드기어를 인수하고,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에 30억 위안을 지분 투자했다.

또 미국 럭셔리 가전 브랜드 데이코를 인수한 데 이어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기업인 비브랩스도 사들였다.

IT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M&A는 피인수기업 경영진을 그대로 놓아두되 오픈이노베이션 등 산업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형태로 차츰 진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은 작년부터 자율주행과 인포테인먼트 연구 개발을 추진해 이번 인수로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단숨에 시장 1위로 진입할 것"이라며 "자율주행 등 추가 전장 사업에 진입하면 삼성전자는 전장의 양대 축인 안전과 편의 기술 사업을 완성하게 된다"고 내다봤다.

IT전자업계에서는 삼성이 스마트카 시장에서 글로벌 선두권으로 도약한다면 하만 인수에 따른 업계 파급력이 구글의 안드로이드·유튜브 합병 효과에 필적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자회사 세운 뒤 하만에 합병시켜
삼성전자의 이번 하만 합병 방식은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에 근거한 것으로 M&A 업계에서는 '역삼각형 합병'으로 불린다.

먼저 삼성전자 미국법인(SEA)이 델라웨어주에 100% 자회사 실크(SILK)를 세운 뒤 하만이 실크를 도리어 흡수합병한다.

이 과정에서 SEA가 보유한 실크 주식을 하만 주식으로 전환해 하만이 삼성전자의 해외종속법인이 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피인수기업인 하만이 삼성전자의 종속법인이 되면서도 합병후 존속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만이 존속법인으로 남으면 각종 특허권과 사업권, 상거래 계약이 유효하다.

하이엔드 오디오 강자인 하만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에서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