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확대에 소비자 지갑 닫힐 수도"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정치·사회 뿐 아니라 실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소비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품었던 유통업체들은 최순실 게이트가 장기적으로 소비심리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10월 '선방'한 유통업계, 그 이후는 "글쎄…"
1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대형마트·오픈마켓 등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은 경기침체와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지난달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10월 매출이 작년 10월보다 4% 늘었고,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3.2%와 11.7% 증가했다.

이마트는 올해 3분기에 2013년 3분기 이후 가장 많은 영업이익(별도재무제표 기준 2천280억 원)을 남기며 '깜짝 실적'을 냈고, 지난달에도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 늘었다.

오픈마켓 11번가에서는 10월 대형가전 매출이 지난해 10월보다 26%, 화장품 매출은 48% 증가했고, G마켓에서는 이 기간 신선식품(26%)과 가구(31%)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소셜커머스 티몬에서도 같은 기간 생활용품(51%)과 패션부문(40%) 등의 매출이 증가했다.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여론이 본격적으로 들끓기 시작한 10월 마지막 주부터 최근까지 3주간의 실적을 살펴봐도 백화점 3사와 이마트,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 모두 10월의 성장세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2014년 세월호와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2년 연속 타격을 받았던 유통업계는 이처럼 소비심리가 다소 개선되는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서울연구원이 지난달 말 내놓은 '2016년 3분기 서울지역 민생경제 체감경기 진단' 보고서를 봐도 서울시민의 체감경기를 대표하는 소비자태도지수(CSI)는 96.5로 2분기보다 2.4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로 얼어붙은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곧바로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소비효율 1등급 가전제품 구매 고객에게 구매액 일부를 환급해주는 등 소비 활성화 정책을 편 점, 올여름 무더위에 이어 겨울 강추위가 예보된 점, 1∼2인 가구 증가와 맞물린 혼밥·혼술 트렌드 등 복합적인 요인이 소비심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통업계는 보고 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곧바로 소비를 절제하고 쇼핑을 삼가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당장 소비심리가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문제는 불확실성…소비심리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
문제는 중장기적인 영향이다.

높아진 분노와 불안감으로 당장 소비심리가 냉각되는 것을 넘어, 이번 사태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 공백은 결국 다양한 부동산·금융·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이는 기업의 투자 위축과 소비자의 소비심리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다음 대통령 선거가 1년 이상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런 불확실성은 가뜩이나 침체한 한국 경제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통업체의 재무담당 임원은 "지금 한창 내년도 경영계획 때문에 바쁠 시기인데 불확실성이 커 (내년 경영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며 "이런 현상은 소비 감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경제주체인 기업의 투자 위축은 결국 경기침체 우려와 소비심리 냉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는 "최순실 사태로 쇼핑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이 일차적인 영향이라면 기업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투자를 미루는 것처럼 소비자들도 불확실성 때문에 의사결정, 특히 내구재 소비를 미루는 것이 이차적인 영향"이라고 말했다.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 최근 불거진 다른 변수들도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려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경기가 침체한 상황이므로 소비가 더 위축된다기보다는 (정부가) 경기 침체기에 필요한 '경제적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하는 등의 일이 발생하면 수출에 관여하지 않는 국민 개개인도 결국 불안함에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이도연 기자 cin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