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가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기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구동칩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성장하는 마이크로디스플레이 사업을 선점하는 한편 부진을 겪고 있는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에서도 반전을 노리는 카드로 풀이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13일 “LG디스플레이가 내년 완료를 목표로 한양대 연구팀과 함께 VR용 마이크로디스플레이 구동칩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디스플레이 구동칩은 외부에서 받은 전력을 영상으로 바꿔 화면에 띄우는 기능을 한다. LCD(액정표시장치)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소재와 크기에 따라 각각 다른 구동칩이 쓰인다.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 LG그룹에서는 계열사인 실리콘웍스에서 설계한 칩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를 통해 만들어왔다.
LG디스플레이, VR 구동칩 자체 개발
구글 글라스 등의 핵심 부품

LG디스플레이가 칩 개발에 직접 뛰어든 것은 마이크로디스플레이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어서다. 대각선 길이 2인치(약 5㎝) 이하의 마이크로디스플레이 시장은 VR과 AR 등 얼굴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시장이 커지면서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미국 글로벌인더스트리애널리스츠(GIA)는 관련 시장이 지난해 6억달러에서 2020년 29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구동칩은 코핀과 이매진 등 미국 업체들이 과점하고 있다. 국내에는 상용화 기술이 없다.

마이크로디스플레이의 성능을 끌어올리려면 구동칩 개발이 절실하다. 오랜 시간 배터리만으로 동작하는 웨어러블 기기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 구동칩이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안면 착용 디스플레이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강점을 갖고 있는 OLED가 핵심 역할을 할 전망이다. GIA는 “얼굴을 따라 휘어지면서도 투명한 성질 등을 구현할 수 있는 OLED가 안면 착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대세가 될 것”이라며 “디스플레이 산업의 혁명을 부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전 노리는 스마트폰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할 구동칩과 마이크로디스플레이는 LG전자 VR기기에 우선 공급될 예정이다. 성능 좋은 안면 착용 디스플레이 개발에 성공할 경우 LG전자의 스마트폰 고민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안면 착용 디스플레이에 통화 기능만 넣으면 기존 스마트폰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는 새로운 시장을 열 수도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반전시키기 위해 이 같은 ‘폼팩터(하드웨어 구조)’ 혁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폴더블(접히는) 디스플레이 적용 스마트폰에 이어 안면 착용 디스플레이를 사용한 스마트폰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폼팩터가 대세가 되면 이전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는 의미가 없어진다”며 “G5 실패 이후 LG전자는 ‘대박’을 노리기보다 손실을 최소화하며 폼팩터 변화를 준비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