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캠프 외교안보 자문단 퓰너, 국내 정·재계 인사와 친분…최근 김승연 회장과 환담도
과거 대우와 특별한 인연…뉴욕과 여의도 등에 트럼프 브랜드 건물 건축
두 차례 한국 방문…"한국 부동산 매력" 언급했으나 실제 투자는 안 해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재계의 트럼프 후보 인맥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정·관계나 외교 분야와 마찬가지로 재계에도 트럼프 측과의 인연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재계 쪽도 인맥 구축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이 주요 수출 시장인 한국으로서는 미국 정가와의 인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과 인연을 가진 재계 쪽 인사는 특별히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며 "이제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새로운 인맥을 구축하기 위해 접촉을 늘려나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트럼프 당선인과 직접 교분이 있는 인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의 외교안보 자문단에 포진한 에드윈 퓰너 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과는 인연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주의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퓰너 전 이사장은 트럼프 선거운동본부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트럼프 캠프의 거의 유일한 친한파로 알려진 그는 1971년 방한한 이래 매년 두세 번 한국에 왔고 북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국내 재계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퓰너 전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막역했고, 박근혜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다.

재계의 소문 난 미국통이기도 한 김승연 회장은 지난달 서울 중구 더플라자에서 퓰너 전 이사장을 만나 환담했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미 간 경제 현안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최근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미 간의 오랜 동맹관계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고 당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 과거 대우그룹과 인연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당시 대우그룹의 건설회사였던 ㈜대우의 건설 부문(현 대우건설)은 부동산 개발업자인 트럼프와 공동으로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인근에 초고층 건물인 '트럼프월드타워'를 건설했다.

지하 2층, 지상 70층에 376가구 규모의 최고급 콘도미니엄(분양 아파트)과 헬스클럽, 고급 식당 등 부대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총 2억4천만 달러를 투입해 착공 3년 만인 2001년 10월 완료됐고 분양도 순항해 트럼프와 대우건설 모두 순익을 챙긴 성공 사례로 남아 있다.

대우건설은 외환위기 중이던 1999년 부유층을 겨냥한 주상복합아파트 사업을 추진하면서 트럼프와 다시 인연을 맺었다.

타사의 주상복합과 차별화되면서 고객의 관심을 끌 만한 이름을 찾던 중 한 임원이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을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트럼프와 직접 협상을 벌여 대우건설이 '트럼프'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대우건설에서 이 사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아파트 설계를 맡았던 설계사무소 소장과 뉴욕지사장이 아파트의 설계와 서비스 등을 트럼프 앞에서 직접 설명하고 브랜드 사용 합의를 얻어냈다"며 "이미 뉴욕에서 양사가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옛 석탄공사 부지에 지어진 '여의도 트럼프월드 1차' 아파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해외 기업이 트럼프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여의도 트럼프월드가 처음이다.

초고층 주상복합은 '철골조'로 지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설계 평면이나 거주 편의성이 뛰어난 '철근 콘크리트(RC·Reinforced Concrete)조' 공법을 도입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대우건설은 트럼프월드 1차 사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듬해인 2000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체육관 부지에 대우 트럼프월드 2차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서울 용산구 한강 대우 트럼프월드 3차(2001년 분양), 부산 트럼프월드 센텀(2003년), 부산 트럼프월드 마린(2004년), 대구 트럼프월드 수성(2004년), 부산 트럼프월드 센텀2차(2004년)까지 총 7개 프로젝트에서 트럼프 이름을 사용했다.

대우건설은 여의도 트럼프월드 1차 사업으로 도널드 트럼프 측에 총 84만 달러를 주는 등 7개 사업장에 대해 총 600만∼700만 달러의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우건설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는 "초반에 부동산 재벌로 알려진 트럼프의 이름을 아파트명에 사용하면서 인지도를 넓히는 데는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이후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일반화되면서 더 이상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2000년 중반부터는 자체 제작한 이름(월드마크)을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외환위기였던 1998년 6월 대우그룹의 초청으로, 1999년 5월에는 여의도 트럼프월드 1차 분양을 홍보하기 위해 두 차례 내한하기도 했다.

첫 번째 방한에서 대우중공업의 거제 옥포조선소에 들러 "개인 요트로 사용하기 위해 구축함 1척을 발주하겠다"는 발언을 해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으나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두 번째 방한에서는 "한국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매력적인 면이 있다.

기회가 되면 부동산 개발 사업에 진출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실제 투자한 사례는 없다.

5년간 대우건설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만 받아갔을 뿐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