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부회장의 세계 : 전설이 된 ‘역대급’ 부회장들]
위기 때 구원투수 자청, 이수빈·손길승·구학서 부회장은 ‘회장’까지 오르기도
‘삼성의 중흥’ 이끈 윤종용·이학수…‘LG 가전 신화’ 주역 김쌍수
(사진) 한국경제신문·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부회장은 월급쟁이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전문경영인은 지근거리에서 오너를 보필한다. 독자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고 기업에 어려움이 닥쳤을 땐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각 기업의 조타수 역할을 하다가 일선에서 물러난 ‘역대급 전문경영인’의 면모를 살펴봤다.

윤종용 삼성전자 전 부회장(현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수 전문경영인’으로 꼽힌다.

그는 1992년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2008년까지 약 17년 동안 그룹 내 최고경영자(CEO)로 활약했다. 엔지니어 출신 직장인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성과와 영광을 경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 사장 재직 중에는 외환 위기를 맞아 1만6000여 명의 임직원을 구조조정했다. 또한 120여 개에 달하는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면서 삼성전자의 체질을 개선했다. 재임 중 1년에 100일 이상을 해외에 머무르는 등 철저한 ‘현장 중심 경영’으로 삼성전자를 초우량 기업으로 일궈 냈다.

삼성의 중흥을 이끈 전문경영인으로 이학수 삼성전자 전 부회장(현 고려대 교우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의 대표 재무통이던 이학수 전 부회장은 1998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아 삼성 내 사업 조정과 투자 조정 등을 주도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삼성전략기획실장 등을 지내며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김쌍수 LG전자 전 부회장은 LG그룹의 ‘간판 전문경영인’으로 통한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초콜릿폰’과 ‘샤인폰’을 통해 휴대전화 부문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등 LG전자 ‘가전 신화’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에는 미국 비즈니스위크 아시아판이 선정한 ‘아시아의 스타 25인’에 뽑히기도 했다.

김 전 부회장은 2007년 (주)LG 부회장을 거쳐 2008년부터 3년간 한국전력공사를 이끌었다.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2대에 걸쳐 롯데그룹의 ‘2인자’ 역할을 했다. 1997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사장 취임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을 도와 롯데쇼핑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전 부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 롯데는 백화점업계 1위를 넘어 거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전 부회장은 2007년 정책본부 부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신동빈 회장을 보좌했다. 2011년엔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는 처음 부회장으로 승진해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를 책임졌다.

◆김연배 부회장, 그룹 비상경영위원장도

경청호 현대백화점그룹 전 총괄부회장(현 현대백화점그룹 상임고문)도 그룹 내 첫 ‘전문경영인 시대’를 연 인물이다.

경 전 부회장은 1975년 현대그룹에 입사한 뒤 1995년 현대백화점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현대백화점그룹 기획조정본부 사장과 백화점 관리부문 사장 등을 지냈다. 정지선 회장을 도와 현대백화점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

경 전 부회장은 정 회장과 함께 2003년부터 구조조정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 등 경영 전반을 총괄했다. 2014년 후진 양성을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그룹 상임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김연배 한화생명 전 부회장(현 한화그룹 인재경영원 고문)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김 회장은 그룹이 어려울 때마다 그에게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도록 했다.

김 전 부회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직후인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사장을 맡아 사업구조 재편과 경영 효율화를 이끌었다. 김 회장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던 2013년에는 그룹 비상경영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한화생명 부회장 취임 후에는 전 사업 영역에 걸친 체질 개선을 추진해 회사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전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한화그룹 인재경영원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한편 부회장을 넘어 회장 자리에 오른 전문경영인도 있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현 삼성라이온즈 구단주)은 재임 중 삼성을 대표하는 ‘원로급 최고경영자’로 꼽혔다.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건희 회장의 고교 4년 선배다. 1965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13년 만인 38세의 나이에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한 그는 삼성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 회장은 1991년 삼성그룹 회장실 비서실장을 맡으며 이건희 회장을 보좌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에는 그룹 내 8인의 전문경영인으로 구성된 그룹 구조조정위원회 수장을 맡아 중요 사항을 조율해 이 회장에게 직보했다.

이 회장은 현명관 당시 비서실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함께 그룹을 이끄는 3두 체제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 삼성생명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했고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삼성라이온즈 구단주를 맡고 있다.

현명관 삼성물산 전 회장(현 한국마사회장)은 공무원 출신 ‘삼성맨’이다.

그는 서울고와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1965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감사원 부감사관을 역임한 뒤 공직에서 물러나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75년 게이오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해 1978년 삼성(당시 전주제지)에 입사했다.

현 전 회장은 삼성건설 사장을 지내던 1993년 그룹 내 공채 출신들을 제치고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그간 삼성의 전통을 깨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방침 덕택이었다. 이후 3년 동안 그룹 관제탑이자 조타수 역할을 수행하며 법대 출신다운 치밀함에 추진력을 두루 갖춘 스타일로 평가받았다.

현 전 회장은 1996년 말 그룹 비서실장에서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겨 2001년 삼성물산 회장 자리에 올랐다.

현 전 회장은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으로 취임하며 삼성을 떠났다가 2005년 전경련을 그만둔 뒤 삼성물산 회장과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3년엔 한국마사회 회장에 취임했고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샐러리맨 신화’ 구학서 전 회장

구학서 신세계 전 회장(현 신세계 고문)은 평사원 출신으로 회장에 오른 ‘샐러리맨 신화’의 아이콘이다. 경기상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72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했다. 삼성비서실 재무팀 과장과 삼성물산 도쿄지점 관리부장, 삼성전자 관리담당 이사를 역임했다.

구 전 회장은 1982년부터 4년 반 정도 삼성물산 도쿄지점에서 근무하면서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과 가까워졌다. 당시 일본에 자주 들르던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면서부터다.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일본에 방문했던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도 자연스레 얼굴을 익힐 수 있었다. 이후 1996년 신세계로 영입돼 경영지원실 부사장을 거쳐 1999년 신세계 대표이사 부사장이 됐다.

구 전 회장은 신세계 대표가 된 직후부터 한국형 대형마트의 ‘효시’인 이마트의 중흥을 이끌었다. 당시 유통업계는 1998년 IMF 외환 위기 여파로 대형 투자를 주저했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전국 이마트의 숫자를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대형마트의 경쟁이 시작되면서 구 전 회장의 혜안이 빛을 발했다. 주요 상권을 미리 선점한 덕에 이마트는 경쟁사와의 대결에서 앞서갈 수 있었다.

구 전 회장은 2009년 신세계 회장으로 승진했고 2012년 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회장 직함을 유지했다. 2014년 말부터 신세계의 고문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직으로 활동 중인 월급쟁이 출신 회장들도 있다.

SK그룹 회장까지 지낸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과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SK이노베이션 회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한준호 삼천리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조금 특별한 케이스다. 손 회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외삼촌으로, 그룹 최대 주주와 혈연관계이지만 기업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재계에서 손 회장을 전문경영인으로 칭하는 이유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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