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파괴…2017 소비시장 지배할 6가지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직장인 성혜진 씨(32)는 지난 주말 내복을 샀다. 5년 전만 해도 그는 아무리 추워도 내복을 입는 게 창피하다고 여겼다. 다리가 굵어 보일까봐 기모가 들어간 스타킹도 안 신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들의 시선보다 내 몸이 따뜻한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복은 인터넷 검색으로 세일행사를 하는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매장을 찾아내 정가보다 20% 싸게 구입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브랜드 대신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가 높은 제품을 검색해 구매하는 소비자. 리서치 전문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2017 대한민국 트렌드》(한국경제신문)에서 전망한 내년 소비시장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120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집어낸 내년도 키워드들은 뭘까.
브랜드 파괴…2017 소비시장 지배할 6가지
브랜드 파괴하는 ‘노노스족’

‘브랜드 파괴’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꼽힌다. 브랜드보다는 품질과 가격, 디자인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많았다. 지금의 경제불황도 원인이지만 미래를 오늘보다 희망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만족할 만한 소득을 얻지 못할 것 같다’고 응답한 비율은 71.9%에 달했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브랜드 파워가 약해진 원인으로 지목된다. 쇼핑할 때 검색은 필수가 됐다. 광고보다 입소문이 더 강력해졌다. 주변 사람이 좋다는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듣고, 블로그 등에서 원하는 상품정보를 찾는 소비자가 많았다. ‘물건을 살 때 광고에서 보거나 들은 정보가 도움이 된다’는 비율은 48.4%에 그쳤다.
브랜드 파괴…2017 소비시장 지배할 6가지
‘저렴한 차별화’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이런 변화를 가속시킨다. ‘노노스족(nonos族)’이 다시 등장한 것. 노노스는 ‘노 로고 노 디자인’을 줄인 말로, 2003년 프랑스 트렌드정보기획사 넬리로디가 처음 사용한 단어다. 제품 디자인에서 브랜드 로고를 지워버렸던 노노스족은 이제 ‘브랜드의 권위’까지 파괴하고 있다. 남들이 알 만한 유명 브랜드보다 개성을 따르겠다는 소비자가 늘었고, 이들은 옷을 세일기간에 구입하거나 할인매장에서 산다.

“오늘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2005년 롯데리아는 프렌치프라이를 튀기는 기름을 식물성 팜유로 바꿨다. 웰빙 트렌드에 따른 변화였다. 그러나 현재 소비자들은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을 더 좋아한다. 아침을 거르고 인스턴트 음식을 즐긴다. 치킨을 ‘치느님’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다. ‘먼 훗날의 행복보다는 지금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57.1%)’는 것. 웰빙보다는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다니고(48%),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52%) 등 미식을 즐기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는다. 사회에서 해방된 개인들이 나홀로 쇼핑과 여가를 즐기고 있다. 2명 중 1명은 스스로를 ‘나홀로족’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솔로 이코노미’ ‘싱글슈머’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혼밥’ ‘혼술’ 등 혼자 보내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많았다. 친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활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혼자 활동하는(71.9%) 사람들이다. 나홀로족에 대한 이미지도 ‘자유로움’ ‘즐길 줄 아는’ ‘당당한’ 등 긍정적 단어가 많았다. 개인의 취미생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늘면서 취향산업이 떠오르고 있는 점도 변화로 꼽힌다.

“사회문제는 먼 산 보듯”

혼자 있을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만족해하지만 직장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직장인의 57.4%가 감정을 숨기고 업무상 요구되는 감정을 꾸며서 표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윗사람의 감정을 맞추던 과거와 달리 개인의 감정도 이해받길 바라는 사람이 늘었다. 사원·대리급도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다(75.3%)고 생각하는 응답자 비율이 높아졌다.

직장과 사회,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할 의지를 보이는 사람은 드물다. 문제를 극장에서 보는 것처럼 감상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회의 극장화’ 현상이다. 1998년 일본 경제학자 사이토 세이치로가 처음 쓴 단어다. 사회 참여율이 떨어지는 반면 해외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은 많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피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응답자의 76.9%가 이민을 고려해봤다고 답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