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구조조정, 6월 개편안에서 큰 진전 없어
부처간 소통 한계에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까지


정부가 31일 공공선박 발주와 해운선사 금융지원을 골자로 하는 조선·해운업 경쟁력 방안을 발표하면서 주요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 마련 작업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1년여에 걸친 논의 과정에서 정부 부처 간 소통능력에 허점을 노출한 데다,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논란까지 빚어지면서 과연 기대한 만큼의 결과물이 도출됐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조선업의 경우 지난 6월 이미 발표된 '구조조정 추진 체계 개편방안'에서 크게 진전이 없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 금융관련 기관이 논의 주도…'서별관회의' 논란에 리더십 문제 노출도

지난해 10월 기업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겠다며 범정부 협의체를 가동한 정부는 5개 업종에 대한 자율적 구조조정 추진 방침을 밝혔다.

한 달 뒤 협의체는 5대 경기민감형 기간사업 중 채권단에 의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업을 제외한 철강·석유화학·건설·해운업의 업황 전망과 경쟁력 현황에 대한 평가 결과와 함께 정책지원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산업 구조조정의 경우 산업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이를 개별적인 채권은행에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앞장서 업계 구조조정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 당시 협의체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당시 철강·유화·건설 등은 이미 업계에서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상황이어서 정부가 대상을 제대로 선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게다가 초반부터 정부 협의체가 금융위 중심으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금융 관련 기관에 의해 주도되면서 산업계 입장이 제대로 반영됐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구조조정 대상 업종별로 자율 컨설팅 등 과정을 거쳐 지난달 철강과 유화 등 2개 업종의 경쟁력 강화방안이 발표됐다.

이어 이번에 조선·해운업까지 강화방안이 마련되면서 정부의 구조조정 밑그림 작업은 일단락된 모습이다.

정부는 앞으로 건설업 등 기타 업종에 대해서도 선제적인 구조조정 필요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1년여에 걸친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컨트롤 타워' 논란이 불거진 것은 또 다른 아쉬움으로 꼽힌다.

특히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은의 4조원 지원이 서별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됐다고 밝혀 파문이 인 이후 국회 청문회까지 열린 가운데 서별관회의는 지난 6월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게다가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놓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줄다리기하는 양상까지 나타나며 우왕좌왕 혼란이 빚어졌다.

이에 정부는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공식 테이블인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신설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부처간 소통에는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 '4개월 허송세월' 조선 경쟁력 강화방안

가장 시급하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은 현 정부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빅3'를 포함한 조선산업 전체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조선 빅3는 인력 감축·자산 매각 등 극심한 수주 절벽을 버티고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자구 계획을 속속 발표했다.

'민간 자율'에 맡긴 조선산업 컨설팅 결과가 나오면 분할·합병 등 큰 폭의 산업 재편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정부가 4개월간의 논의 끝에 발표한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지난 6월 8일 내놓은 '조선산업 구조조정 추진 체계 개편 방안'을 미세 조정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조선 빅3 체제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각 사의 강점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는 원론적 방안을 재차 밝혔다.

조선 빅3에서 대우조선을 탈락시키고 '빅2'로 줄인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3사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조선 3사 부실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받아온 해양플랜트에 대해서도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수익성 평가를 대폭 강화해 과잉·저가 수주를 방지한다"는 원론적인 대책에 그쳤다.

대우조선의 해양플랜트 사업은 '철수'가 아니라 '축소'로 가닥이 잡혔다.

조선산업 분석을 맡은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대우조선은 독자 생존이 어렵다"며 '빅2'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가 논란이 일자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을 강조하던 정부는 맥킨지 컨설팅 결과를 '참고 자료'로 격하하기도 했다.

정부 내부 의견 조율도 쉽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빅2 재편'을 지지하고 금융위원회는 '빅3 유지'를 주장하면서 논의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정만기 산업부 1차관은 "한 번도 대우조선을 정리하고 '2강'으로 가자는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며 "대우조선이 경쟁력 있는 분야를 확보하고, 회생을 빨리할 수 있는 방법론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부 계획이 발표되자 조선업계에서 '맹탕 대책'이라는 비판이 들끓는 가운데 정치권도 즉각 반응했다.

국민의당 채이배·박지원 의원, 정의당 노회찬 의원 등 '조선산업 발전 국회의원 모임'은 "단순히 설비와 인력을 줄이는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임기를 버틴 후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차기 정권으로 떠넘겨 그야말로 폭탄 돌리기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세종연합뉴스) 김동호 박초롱 기자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