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by 재용' 바이오·자동차 전장 등 신사업 '궤도 올리기' 급선무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에 3세 경영 시대가 열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오는 2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 올라 전면에 나선다. 오너 일가가 그룹 매출의 절반, 이익의 3분의 2를 책임지는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를 맡는 건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 퇴진 이후 8년여 만이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25년간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합리적이고 판단이 빠르며 거만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행비서 없이 다니고 의전이나 격식을 부담스러워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 그는 “내가 더 멀리 본 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뉴턴의 말처럼 삼성을 일군 이병철 창업주, 반도체를 기반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발판으로 더 크고 강한 삼성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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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by 재용' 바이오·자동차 전장 등 신사업 '궤도 올리기' 급선무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하다

삼성은 끊임없이 변화해온 기업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1938년 삼성상회를 설립해 돈을 모은 뒤 모직 유통 금융 전자 등으로 사업을 넓혀가며 재계 1위에 올랐다. 이건희 회장은 본인이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로 시작한 반도체 사업을 기반으로 글로벌 삼성전자를 일궜다. 반도체로 번 돈은 TV 스마트폰 등이 세계 1등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아직도 삼성의 주력 사업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TV다. 게다가 TV와 스마트폰 산업은 성장기를 지나 정체기로 접어들었다. 이 회장이 2010년 “10년 뒤 삼성의 주력사업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삼성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정보기술(IT)산업에선 하루가 멀다고 판이 바뀐다. 구글이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고, 애플은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 AT&T는 100조원 가까운 돈을 들여 콘텐츠사업자 타임워너를 인수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초 드림캠퍼스에 참여해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한경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초 드림캠퍼스에 참여해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한경DB
이 부회장이 ‘천재 경영자’로 꼽히는 이 회장과 다른 점은 글로벌 감각과 젊음이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경영학을 배웠고, 글로벌 IT 업계의 변화를 누구보다 현장에서 많이 경험했다. 이 부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신사업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삼성 경영진에 “스마트폰 이후, 3~5년 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여러 차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꼽는 신사업은 바이오다. 삼성이 2010년 5대 신수종사업의 하나로 바이오를 지목한 뒤 이 부회장은 이를 챙겨왔다. 이 부회장은 올초 중국 보아오포럼에서 “IT와 의학, 바이오를 융합해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 4년간 바이오 부문에 3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자동차 전장사업도 핵심 미래사업으로 꼽힌다. 자동차가 스마트해지면서 자동차가 전자제품이 되는 패러다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신설된 삼성전자 전장사업팀은 자율주행기술과 인포테인먼트 등을 집중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중국 BYD에 지분을 투자했다. 전장부품 납품 확대를 노리고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피아트의 부품사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설이 나온 것도 인수합병(M&A)을 통해 한 방에 전장업계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기존 전자사업에서도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새 사업을 찾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2년 IoT 업체인 스마트싱스를 인수한 데 이어 올해 클라우드 솔루션 업체인 조이언트, AI 전문회사인 비브랩스 등을 사들였다.

핵심 사업 위주로 재편

신사업에서 바로 큰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신사업을 잘하려면 기존 사업에서 끊임없이 이익을 내야 한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잘하는 사업을 더 키우고, 자신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사업 재편을 추진해왔다.

2014년 말 삼성테크윈 삼성토탈 등 4개사를 한화에 매각하고, 작년 삼성정밀화학 등을 롯데그룹에 팔았다. 화학 방산 등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한 것. 삼성전자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카메라 LED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세계 10위 규모의 프린터사업부는 미국 HP에 매각하기로 한 상태다. 여기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깔려 있다. 또 부실 수주로 지난 몇 년간 수조원대 적자를 내온 중공업 건설 사업은 치열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엔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들 부품은 ‘타이밍 산업’이다. 시장이 원하는 시점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고 양산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대신 조금이라도 늦으면 적자가 불가피하다. 반도체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 하나 짓는 데 10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이런 초대형 투자엔 오너인 이 부회장의 결단이 필수적이다. 갤럭시노트7 조기 단종으로 상처 입은 스마트폰 사업을 다시 제 궤도에 올려놓는 것도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