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영국 디자이너 올라 카일리 "디자인은 늘 즐거운 놀이…여행·영화서 영감 얻는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다. 해안가와 숲 사이에 살았다.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은 단순한 도형이었다. 비가 자주 오는 더블린의 바다는 쪽빛보다는 회색에 가까웠다. 들판에서 뜀박질할 때는 연두색 도화지 위에서 노는 것 같았다. 그 위에 핀 야생화는 겨자색 무늬였다. 12세 때 재봉틀을 선물받은 뒤에는 자신이 그린 무늬로 옷을 만들어 동생들에게 입혔다. 영국의 디자이너 올라 카일리(53·사진)의 얘기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새로운 무늬를 그려내고 옷을 만드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며 “내게 디자인은 ‘놀이’였다”고 말했다.

카일리는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올라 카일리’를 출시했다. 국내에는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빈,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 유명인이 즐겨 입는 브랜드로 알려졌다. 그의 별명은 ‘프린트(무늬)의 여왕’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그의 디자인을 보고 별명을 붙였다. 카일리 디자이너는 “브랜드의 트레이드 마크인 줄기 패턴을 비롯해 매 시즌 새로운 무늬를 디자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옷을 디자인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먼저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 남동부 휴양지인 코트다쥐르로 떠날 때도 있고, 영국 요크셔무어나 포르투갈 도시 포르투로 갈 때도 있다. 어떨 땐 박물관으로 간다. 영감을 받기 위해서다. 여행 중 머릿속에 이미지나 심상이 스치면 이야기를 구상한다. 가령 요크셔무어에서는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러고는 자신이 받은 인상을 디자인으로 전달하기 위해 무늬와 색상을 구상했다. 숲에서 본 낙엽과 나무 그림자를 활용했다. 그 결과 올해 가을·겨울 시즌 올라카일리 드레스에는 잎사귀 패턴이 물들게 됐다. 그는 “상념을 스토리로 풀어낸 뒤 다시 추상적인 그림으로 그려낸다”며 “그 그림을 활용해 색상과 패턴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명품의 향기] 영국 디자이너 올라 카일리 "디자인은 늘 즐거운 놀이…여행·영화서 영감 얻는다"
[명품의 향기] 영국 디자이너 올라 카일리 "디자인은 늘 즐거운 놀이…여행·영화서 영감 얻는다"
올해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에는 영화를 보고 디자인한 옷도 있다. 영국의 사실주의 영화인 ‘카인드 오브 러빙’ ‘조지 걸’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카일리 디자이너는 “프랑스의 여배우 안나 카리나가 하운드투스 체크무늬 벨벳 재킷과 러플이 달린 드레스로 가득 찬 슈트케이스를 들고 1960년대 북아일랜드를 방문하는 장면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국에 온 안나 카리나는 즉흥적이고 두려움 없는 성격처럼 과감한 옷을 즐겨 입는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쓰지 않는다. 멀리 요크셔무어로 산책을 나갈 때면 짧고 헝클어진 파마머리를 하고 동물무늬 자수가 새겨진 카디건을 입는다. 항공점퍼를 걸치고 동네 클럽에 가서 춤을 추기도 한다.’ 카일리 디자이너가 이번 시즌 옷을 디자인하기 위해 구상한 스토리다.

올라카일리는 원래 한섬이 직수입해 판매했다. 2014년 계약이 끝났다. 올해 대구백화점이 이 브랜드 국내 판권을 따낸 뒤 대구백화점 프라자점에 매장을 내면서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대구백화점은 앞으로 올라카일리의 국내 매장을 더 늘려갈 계획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