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24차례…3조1천억원 생산차질 큰 상처 남겨

현대자동차 노조가 8월 한 차례 부결 사태를 빚은 뒤 다시 마련한 2차 잠정합의안을 어렵사리 통과시켰다.

노사뿐만 아니라 일반 조합원까지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가시밭길 같은 임금협상이 5개월 만에 마무리된 것이다.

그러나 노조 집행부가 강성이어서 앞으로의 노사관계와 내년 협상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 나온다.

◇ 파업 24차례…길고 험난했던 협상

올해 임금협상은 5월 17일부터 시작해 무려 27차 교섭까지 진행되며 5개월이나 지리하게 이어졌다.

예년 노사협상이 빠르면 7월 여름휴가 전 또는 휴가 후 8월, 늦으면 9월 추석 연휴 전에 모두 마무리한 것과 대조된다.

올해는 여름휴가와 추석 연휴를 넘기고, 노조가 새해 사업을 짜는 10월 중순에서야 협상을 마쳤다.

갈등의 손실은 컸다.

노조는 협상 과정에서 24차례 파업을 벌였고, 12차례 주말 특근을 거부했다.

회사는 이 때문에 생산차질 규모의 누계가 14만2천여 대에 3조1천여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3조원이 넘는 차질은 1987년 노조 파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장시간 파업과 교섭에 노사도 부담이 컸고 조합원들의 피로감도 극에 달했다.

협상이나 파업을 더 끌고 갈 수 없는 한계치에 육박해 한발씩 양보하는 지혜로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

1차 잠정합의안 부결 이후 교섭과 파업을 해도 더 나은 회사 제시안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과 파업으로 '무노동 무임금' 적용에 따른 조합원의 임금손실 규모 역시 최대라는 점 등이 협상 타결의 배경이 됐다.

◇ 정부 긴급조정권 발동 압박에 노사 부담
현대차 노사협상이 시간만 허비하고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정부가 꺼낸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 카드는 올해 교섭을 뒤늦게나마 마무리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는 협력업체의 손실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지속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긴급조정권 발동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파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거나, 국민경제를 해칠 우려가 있을 때 공익사업장이나 대규모 사업장에 발동하는 조치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해당 노조는 30일간 파업 또는 쟁의행위가 금지되며,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을 개시한다.

이는 노사 모두의 교섭자율권이 타의에 의해 빼앗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사 모두 서로 원하는 교섭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노사 갈등이 노정 갈등으로 이어져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었다.

노사 모두 바라지 않은 긴급조정권은 막바지 교섭에서 힘겹게 합의안을 도출한 계기가 됐다.

◇ 노조 집행부 강성 유지…노사관계 전망 '흐림'
올해 임금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은 현대차 노사관계는 내년에는 임금에다 단체협상까지 타결해야 해 전망이 어둡다.

노조 집행부가 강성 노선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임금협상이 여의치 않자 노조는 12년 만에 1조와 2조 근무자가 온종일 일하지 않고 출근도 하지 않는 전면파업까지 벌였다.

장기 교섭과 파업에 지친 조합원 사이에서도 내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임금인상만으로도 노사가 극한 대립양상을 보였는데, 단체협약 요구안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면 곳곳에서 갈등이 일 가능성이 높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 카드를 쉽게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올해 현대차 노사협상을 지켜보며 "대화와 타협이 아닌 파업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구시대적 교섭 문화와 쟁의행위 패턴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사측 교섭대표인 윤갑한 사장도 '상견례→교섭→노동쟁의 조정신청→파업→타결'의 판박이 협상을 되풀이하며 매년 임금협상에 소모전을 펴는 것을 중단하자고 강조한 바 있다.

현대차 노사가 국민기업으로 국가와 지역 경제를 고려한다면 파업 일변도에서 탈피해 상생하는 관계로 변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