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더 먼저, 더 빨리…R&D 투자 속도 높이는 기업들
경영환경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혁신 속도가 경쟁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보스톤컨설팅그룹의 최근 설문 조사 결과, 혁신 성과 달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신기술에 대한 빠른 수용’을 꼽은 기업이 1년 전 대비 크게 늘었다.

속도 경쟁에서 예외인 기업은 많지 않다. 스마트폰 생태계를 선도적으로 이끈 애플조차 중국 시장에서 최근 로컬 업체의 빠른 혁신 속도에 밀리기 시작했다. 러닝머신의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고, 그 위를 달리는 기업들은 제자리라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기업들은 혁신 속도를 높이기 위해 혁신의 산실인 연구개발(R&D) 속도를 높이려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R&D 프로세스를 더 효율적이고 기민하게 바꾸는 ‘애자일(Agile) 기법’을 도입하는 기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고객 니즈가 명확하지 않고 빠르게 바뀌는 경우 시장에 대한 불분명한 가설을 토대로 순차적으로 R&D 단계를 밟으면 시간만 낭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어 고객 반응을 들어보고,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렇게 시장 변화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애자일 기법이라고 부른다.

거대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도 빠른 혁신을 위해 2013년 ‘패스트워크’라는 애자일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GE 경영진은 소규모 다기능 팀을 구성하고, 이 팀에 3개월 안에 신규 프렌치 도어 냉장고 시제품을, 1년 안에 생산 제품을 만들라는 도전적인 목표 수준을 제시했다. 개발팀은 목표 달성을 위해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어 여러 차례 고객 의견을 받아 수정하는 과정을 밟았다. 그 결과 개발 속도는 2배 빨라지고, 비용은 절반으로 줄어들고, 판매는 2배 이상 늘었다.

더 먼저, 더 빨리 외부 혁신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기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기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은 대기업이 초기 스타트업 대상으로 3개월 내외의 정해진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멘토링, 네트워킹, 펀딩을 지원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기업은 초기 스타트업이 보내온 몇 백건의 신청서를 검토하고, 선정된 스타트업과 협업하면서 내부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신생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게 된다. 현 사업을 와해시킬 가능성이 있는 ‘적’을 가까이 두는 한편 필요 시 지분 투자 및 인수를 통해 아군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다.

디지털화 및 자동화도 R&D를 가속화하는 중요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가상 실험을 통해 개발 시간을 40% 단축했고, 임상 환자 수를 60% 줄이는 데 성공했다.

R&D 가속화를 위해 모든 기업에 효과적인 만병통치약과 같은 기법을 찾기는 어렵다. 각 기업 R&D에 존재하는 ‘낭비’에 대해 섬세하게 진단하고, 맞춤형 가속화 처방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최경운 <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rje216@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