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털고 가겠다' 정면돌파 의지…손실 등 부정적 요소 미리 반영
"현 단계는 수습이 우선"…분위기 쇄신용 조기 인사는 없을 듯
사내외서 위기론·자성론 봇물…'상명하복 군대식 문화가 원인' 지적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갤럭시노트7 사태가 몰고 온 '초유의 위기'로 시험대에 올랐다.

더욱이 이 부회장은 오는 27일로 예정된 삼성전자 임시 주주총회에서 책임경영의 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된다.

'등기이사 등판 타이밍'이 공교롭기도 하지만, 이제 상법상 이사로서 이번 사태를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삼성전자라는 거대기업을 정상화해야 하는 책무를 지게 된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와 관련해 "스마트폰 결함으로 악화한 위기가 삼성의 명백한 후계자인 이 부회장을 중대한 지도력 시험대로 몰아넣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의 미래를 이끌어야 할 이 부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이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원점 재출발' 위기돌파 전략 구상중
12일 삼성과 재계, 외신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현재 해외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북미법인 등에서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보고를 받는 등 일상 업무를 처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달 21일에만 해도 갤럭시노트7을 직접 손에 들고 삼성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면서 재판매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갤럭시노트7 교환품에서도 국내외에서 잇따라 발화 사례가 터져 나오자 결국 제품을 출시 발표 54일 만에 단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성전자가 미국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등 주요 국가의 규제 당국이 리콜 등 강제조처에 나서기 전에 사전협의를 통해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곧바로 단종을 공식화한 데는 이 부회장의 결단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또 이날 3분기 잠정실적을 정정 공시했다.

영업이익을 7조8천억원에서 5조2천억원으로 2조6천억원이나 줄여 발표한 것이다.

현 단계에서 추산할 수 있는 갤럭시노트7 단종에 따른 직접비용을 전부 반영했다는 것이 삼성 측의 설명이다.

손익 변동사항을 회계기준에 따라 실적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히 공시의무에 속하는 것이지만, 삼성전자가 단종 비용을 3분기에 모조리 반영한 것은 다소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내년 2월초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발표할 갤럭시S8 신작부터는 '원점에서 재출발해야 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부정적인 요소를 가능한 한 미리 해소하겠다는 전략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사태로 야기된 소비자 불신을 불식시키고 제품 안전도에 대한 보증을 확고히 하는 한편 폴더블 디스플레이(접는 스마트폰) 등 새로운 혁신으로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삼성의 이번 위기는 1994년 삼성전자가 애니콜 초기작인 무선전화 15만대를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쌓아놓고 임직원 2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사른 눈물의 화형식 사태와 종종 비견되기도 한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제품 불량률이 11.8%에 달하자 불량제품 화형식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해 삼성전자의 외형과 글로벌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진 점에 비춰 이번 사태의 여파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조기 단종 결정과 손실 반영 등을 통해 '털고 갈 것은 확실하게 털고 가겠다'는 메시지를 사내외와 시장에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 사내게시판에 '혁신조급증' 등 자성론
삼성전자 사내 익명게시판에는 애플을 이겨야 한다는 혁신 조급증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자성의 글 등이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인 개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빨리, 최고의 기능을, 최대한 많은 용량으로 탑재하라'는 무리한 요구가 있었다는 내부 비판 의견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정해진 (개발) 일정에 무조건 맞춰야 한다'는 상명하복식 문화가 이번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이 아니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의 군대식 문화를 지적하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삼성 주변에서는 이 부회장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안팎의 비판을 수용해 조직문화를 대수술할 수 있는 혁신안을 들고 나와야 할 것이라는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은 11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고 사장은 "모든 고객이 우리 삼성 제품을 다시 신뢰하고 즐겁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반드시 근본원인을 철저히 규명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메일을 접하고 '힘을 내서 재도약하자'는 응원과 격려의 글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 사태 수습 이후 책임 물을 듯…엘리엇 공세도 난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삼성이 조기 인사를 통해 분위기를 쇄신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지금은 수습이 최우선인 상황"이라며 "연말 정기인사를 앞당기려는 움직임은 없다"고 전했다.

따라서 현 체제에서 갤럭시노트7 사태가 몰고온 파장을 마무리한 다음 정기인사 시즌에 맞춰 정상적인 평가 이후 신상필벌에 따른 인사를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부회장은 또 삼성전자 분사와 지주회사 전환, 30조원 특별배당, 분할후 사업회사의 나스닥 상장, 독립적인 사외이사 추가 등을 요구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세에도 직면해 있다.

지주회사 전환 요구는 삼성 오너일가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측면도 있지만 그외에 특별배당 등은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요구다.

또 엘리엇 측이 추가 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가 이달 말 콘퍼런스콜 등을 통해 주주친화정책 등과 관련해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