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싼커'가 바꾼 한국관광 풍경
지난 10일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10층. 중국 청두에서 온 시이 씨(30)는 마몽드 매장에서 화장품을 고르고 있었다. 시씨는 여자친구에게 줄 립스틱 몇 개를 고른 뒤 카드 대신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중국의 간편결제 앱(응용프로그램)인 알리페이를 실행하자 수초 만에 결제가 끝났다. 쇼핑을 마치고 시씨는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중국의 맛집 평가 앱인 다중뎬핑(大衆点評)을 실행한 그는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명동 대신 시청 쪽에 있는 한식당을 골랐다. 시청 쪽엔 처음 가본다는 시씨는 바이두 지도 앱을 켜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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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싼커'가 바꾼 한국관광 풍경
카드 대신 모바일 결제

시씨는 단체 패키지가 아니라 자유여행으로 한국을 찾은 싼커(散客·개별 관광객)다. 시씨는 “비행기 티켓 구매부터, 숙소 예약, 쇼핑까지 모든 여행 일정을 스마트폰 앱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면세점 이용객이 11일 서울 퇴계로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에서 간편결제 수단인 알리페이를 이용해 결제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 면세점 이용객이 11일 서울 퇴계로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에서 간편결제 수단인 알리페이를 이용해 결제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시씨와 같은 20~30대 ‘스마트 싼커’가 늘어나면서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 중국인 관광객(유커)의 한국 관광 풍경이 바뀌었다. 면세점에선 간편결제를 활용하는 개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혜택을 마련했고, 국내 맛집 추천·숙박 앱들은 중국 기업과 손잡고 싼커 대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알리페이코리아는 올해 국경절 연휴 기간 한국에서 알리페이 앱을 이용한 거래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18% 증가했다고 밝혔다. 알리페이는 충전식 선불카드를 앱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서비스다. 국내에서 알리페이와 제휴한 매장은 3만2000여곳에 이른다. 알리페이가 진출한 70개국 중 한국의 매출 비중은 35%로 1위다. 정원식 알리페이코리아 대표는 “단체 관광객들이 개별 관광객으로 전환되며 커피숍과 레스토랑 등에서 알리페이를 이용하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에서도 간편결제를 활용한 결제가 20%를 차지하고 있다.

맛집, 숙소 추천도 앱으로

싼커들은 음식점을 고를 때도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다. 가장 인기가 많은 맛집 추천 앱은 다중뎬핑이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중국인 블로거 후기와 이용자들의 별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10월 국내 콘텐츠 마케팅 기업인 옐로스토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40만건의 콘텐츠가 중국어로 번역됐다. 한국의 맛집 추천 앱인 식신, 핫플레이스는 수년간 쌓은 맛집 정보 데이터를 알리페이에 제공했고, 알리페이는 이 정보를 번역해 지난달 말 맛집 추천 서비스를 시작했다.

모텔 숙박 예약 앱인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중국 여행사와 손잡았다.

명동서 강남과 지방으로

싼커가 많아지면서 서울에선 명동 일변도였던 쇼핑 중심지가 강남 일대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이번 국경절 연휴 기간 서초구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강남구에 있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중국인 고객 매출은 각각 77%, 65% 증가했다. 명동 인근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 매출 증가율 27%보다 높다.

제일기획의 중국 자회사인 펑타이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명동보다 홍대, 북촌 한옥마을 등의 정보를 검색한 유커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벽화마을과 이화여대 근처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지방 관광도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펑타이는 부산국제영화제, 원아시아페스티벌 등이 열린 부산과 한류 아이돌인 지드래곤이 운영하는 카페 등이 있는 제주 지역 검색량이 특히 많았다고 설명했다. 경기 가평의 ‘쁘띠프랑스’도 인기였다. 강원도 일대의 태백산, 함백산 등을 등반하고 횡성이나 태백에서 한우를 즐기는 여행 코스도 싼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