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금융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농협 등 주요 은행의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 속에 재건축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가계대출…농협은행, 올해 9조↑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10일 “가계 대출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은행은 금융감독원이 특별점검을 할 것”이라며 직접 압박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합계는 지난해 말 458조6777억원에서 올 3분기 말 490조9634억원으로 7%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1년도 안 돼 32조원 정도가 불어난 셈이다.

증가 속도도 빨라져 지난 3분기에만 올 들어 증가폭의 절반 정도인 14조6776억원이 늘었다. 가계대출 증가액의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했다. 지난 3분기 말까지 5개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5조6147억원으로 전체 증가액의 80%에 육박했다.

늘어난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아파트 집단대출 증가액이 12조원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 들어 아파트 신규 계약은 많이 줄었지만 기존 약정된 중도금 대출이 순차적으로 실행되면서 잔액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별로는 농협은행의 가계대출이 작년 말 75조4233억원에서 84조4246억원으로 가장 많은 9조원가량이 늘었다. 이 기간 농협은행의 주택담보대출도 6조4935억원이 늘어 3분기 말 현재 55조5829억원을 기록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부동산담보대출 금리를 0.2~0.3%포인트가량 내려 연평균 2%대 중반으로 해주자 주택 외 상가, 오피스텔, 토지 등의 담보 대출이 대거 몰렸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상반기에만 6조6744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는 등 올 들어 3분기 말까지 가계대출이 7조627억원 증가했다. 특히 가계 신용대출이 많이 늘어 지난해 말 15조9531억원에서 지난달 18조2011억원으로 커졌다.

신한은행도 올 들어 3분기까지 가계대출이 6조9761억원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이 4조7858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또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의 가계대출은 이 기간 각각 6조1831억원과 3조원 증가했다. KEB하나은행은 신용대출을 줄이면서 가계대출 증가폭이 가장 적었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압박이 강해지자 대출이자를 올리고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올 들어 가계대출 증가폭이 가장 컸던 농협은행은 신규 대출금리를 인상할 방침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받으러 오는 고객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신규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이미 지난달부터 가산금리(은행 마진)를 각각 평균 0.12%포인트, 0.09%포인트 인상해 대출금리를 올렸다. 국민은행도 지난달 평균 신규대출 금리를 0.04%포인트 인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고객이 제2금융권으로 몰려가는 ‘풍선효과’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금리 인상 외에 대출심사 강화는 대부분 은행이 신중하게 저울질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