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2016 대한민국 갑질 리포트] 나도 모르게 '(갑)甲옷' 입고 있는 한국인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투명해질 것이란 기대가 높다. 공직 사회는 특히 그렇다. 청탁과 금품 수수 관행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천하의 김영란법으로도 어쩔 수 없는 관행이 있다. 이른바 ‘갑질’이 그것이다. 갑질은 ‘갑(甲)’의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 판·검사, 공무원, 기업 오너, 언론인 등이 주로 갑질의 주체로 등장한다. ‘땅콩 회항’이 대표적이다. 이뿐만 아니다. 거래 기업 간 비즈니스, 아파트 등 집단생활, 마트와 편의점의 거래 행위 등 일상생활에서도 갑질은 버젓이 행해진다. 오히려 훨씬 심하다. 횟수도 많고, 뿌리도 깊다. 김영란법으로도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아파트 경비원을 담뱃불로 지지고 무릎을 꿇리거나, 물품 배송 지연을 이유로 업체에 현금을 요구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가로채거나 성폭행하는 갑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네 명이 편의점과 대형마트, 서울시 다산콜센터, 서울 중구청 민원실에서 현장 체험한 결과도 비슷했다. 마트 직원을 무릎 꿇리는가 하면 임신한 여성 공무원을 밀치고 멱살을 잡은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갑으로 돌변한다는 것이 이곳 종사자들의 설명이었다.

문제는 갑질을 한 사람은 이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이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갑질을 한 적이 있다’는 사람은 전체의 14.5%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갑질을 당했다’는 사람은 55.8%나 됐다. 부지불식간에 갑질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자신도 모르게 갑(甲)옷을 입는 곳이 한국 사회’란 말까지 나온다.

정인설/도병욱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