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엣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 분사와 주주 배당 등을 요구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6일 전자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번 엘리엇의 분사 요구로 삼성전자가 인적분할을 위한 명분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즉 삼성전자를 삼성전자 홀딩스(지주회사)와 삼성전자 사업회사로 쪼개는 방안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유력한 시나리오로 시장에서 거론돼오던 것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분은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12.78%로 가장 많다.

최대주주는 7.55%를 보유한 삼성생명이고 이어 삼성물산이 4.25%, 이건희 삼성 회장이 3.54%, 삼성화재가 1.32%, 이재용 부회장이 0.60%를 각각 갖고 있다.

자사주를 제외한 삼성 측 지분율을 모두 합하면 17.26%다.

반면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넘는다.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총수) 일가로서는 좀 더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지분율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지면서 지분 확대에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지분 1%(164만327주)를 확보하려면 주당 가격을 160만원으로 쳐도 2조6천245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은 이 같은 비용 부담 없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물산 등 삼성 측의 지분을 늘리는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삼성전자 투자부문(홀딩스)과 사업회사 간 주식 스와프(교환)→자사주 의결권 부활→삼성전자 홀딩스와 통합 삼성물산의 합병'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밟으면 이 부회장 측이 삼성전자 홀딩스의 지분을 40%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삼성전자 홀딩스는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지분을 30% 수준까지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을 타이밍과 결단의 문제로 봐왔다.

언제이냐의 문제일 뿐 결국은 삼성전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삼성 측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엘리엇 측이 이런 분할 시나리오를 권유하고 나선 것이다.

엘리엇은 삼성전자 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삼성전자와 오너 일가가 이룬 과거 업적을 지지하고, 지주 전환을 통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더 나아가 '삼성전자를 홀딩스와 사업회사로 분리→삼성전자 홀딩스와 사업회사 간 지분 스와프·공개매수 통해 지주 설립→삼성전자 홀딩스와 삼성물산의 합병→금산 분리를 위해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금융 지주회사 설립'이라는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안까지 제안했다.

이는 그동안 시장이 그려온 지배구조 개편의 밑그림과 거의 일치한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제안의 배경이 삼성전자의 저평가 해소이지만 사실상 삼성이 스스로 꺼내기 힘들었던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지주 전환의 명분을 엘리엇이 세워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삼성 측에 적대적인 행보를 보였던 엘리엇이 전격적으로 이런 제안을 던진 속내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삼성전자의 주식 가치의 극대화와 주주가치의 제고가 꼽힌다.

당장 엘리엇이 서한에서 지적한 대로 이런 조치를 통해 삼성전자의 주가가 올라가면 삼성전자 주식 0.62%를 쥐고 있는 엘리엇도 주가 상승의 수혜를 본다.

배당 강화 역시 삼성전자의 주주인 엘리엇이 직접적인 수혜자가 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당장 생각해볼 수 있는 엘리엇 쪽의 이익으로는 주가 상승과 배당 확대에 따른 혜택이 있다"며 "그 밖에 다른 속내가 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로서도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을 겪으면서 쌓인 감정의 앙금 탓에 엘리엇의 제안을 선의로만 해석하긴 힘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배당 강화 등 다른 외국인 주주들도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요구를 던져 자신의 우호 지분을 확대하려는 조처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엘리엇의 제안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매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엘리엇의 제안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가 미국식 행동주의 투자를 아시아 기업들에 심으려는 야심 찬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