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처음 알려지기 이전부터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용등급을 낮추기 시작했으나, 산업은행만 유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3일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KB국민·우리·신한·KEB하나·기업·산업·수출입·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 8곳의 지난 5년간 대우조선에 대한 신용평가 결과를 분석한 결과 산업은행만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모든 은행들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대우조선에 대한 신용평가 결과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했다.

대우조선의 신용평가에 극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2015년이다.

대우조선에 꾸준히 A∼AAA 수준의 신용도를 매겨 온 시중은행들은 이 해에 일제히 B∼BBB 수준으로 신용도를 낮췄다.

A은행의 경우 2012∼2014년 연속으로 AA-를 줬던 대우조선의 신용도를 2015년 B+로 내렸고, B은행은 2012∼2014년 A+에서 2015년 BBB-로 조정했다.

C은행은 2014년 A에서 2015년 BB로 신용도를 하락시켰고 같은 기간에 D은행은 A2에서 B3로, E은행은 AA-에서 BBB로, F은행은 3B에서 6B로 각각 낮췄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2012∼2013년 A, 2014년 A-의 신용등급을 부여한 데 이어 2015년 정기 신용평가에서도 A-를 유지했다.

산업은행은 7월에야 수시 신용평가를 벌여 BBB-로 등급을 낮췄고, 9월 수시평가 때 이를 유지했다가 12월 수시평가에서 다시 BB로 소폭 하향 조정했다.

올해에도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대우조선의 신용등급을 C∼CCC 등급으로 떨어뜨렸지만, 산업은행은 정기 신용평가에서는 BB-를 부여했다가 8월 수시평가에서야 CCC 등급을 매겼다.

은행들의 신용평가는 보통 결산이 끝난 이후인 5∼7월에 이뤄진다.

대우조선의 대규모 부실이 처음 시장에 알려진 것이 지난해 7월이므로,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부실이 표면화하기 전부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신용평가에 미리 반영해 뒀으나 산업은행만 소극적으로 대응한 셈이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아직 재무제표에 부실이 포함되기 이전인 만큼 대우조선의 잠재적 위험성을 비재무점수를 통해 반영했다.

시중은행의 신용평가는 크게 재무적 평가와 비재무적 평가로 나뉘는데, 비재무적 평가는 기업의 영업활동 전망이나 경영 위험 등을 고려한다.

A은행은 2014년 76.85점을 줬던 비재무점수를 2015년 24.06점으로 대폭 깎았고, B은행도 78점에서 56점으로 낮췄다.

E은행의 경우에는 2014년 대우조선에 비재무점수 189점을 줬으나 이듬해에는 48점으로 크게 줄였다.

산업은행은 2015년 정기·수시평가에서 비재무점수를 줄곧 BBB∼BBB+ 수준으로 유지해 이전보다 소폭 줄이는 데 그쳤다.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등급은 여신거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료로, 이 등급이 크게 하락하면 여신 회수와 신규대출 취급 제한 등의 관리를 하게 된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에 나서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신용등급이 필요하므로, 등급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으로 민 의원은 추정했다.

민병두 의원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한 대우조선에 대한 4조2천억원 지원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면 신용등급을 하락시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위험한 수준으로 대우조선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면 그에 따른 여신회수와 대출제한 등 후폭풍이 두려워 등급을 유지하려 했을 유인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