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들 "대응방향 신중 검토"…이미 지급한 생보사들은 "정상 지급"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의 지급 여부에 대해 최종 승소 판결이 나오자, 그간 지급을 거부해 온 생명보험사들은 내심 환영하면서도 향후 금융당국과의 마찰 가능성 등을 걱정하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30일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한 대형 생보사의 관계자는 "소멸시효라는 원칙에 관한 것이므로 논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었던 결론"이라면서도 "향후 대응방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판결 내용을 확인한 뒤에 결정할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교보생명이 고객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자살보험금 청구권은 소멸시효 기간이 완성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소송에서는 승소했지만, 생보사들 사이에 입장이 다른 데다 금융감독원의 방침도 거스르게 되는 터라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생보사들은 2010년 4월 이전에 판매한 재해특약 약관상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두고 소비자들과 소송을 벌인 끝에 지난 5월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패소,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한 바 있다.

문제가 된 것은 그 이후에 발생했다.

해당 보험금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건도 지급할 것인지를 두고 금융당국과 일부 생보사들의 방침이 엇갈렸다.

금감원은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하라고 결정했고, ING생명·신한생명 등 7개 생보사는 이 방침을 따랐다.

그러나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 등 대형사들을 필두로 한 일부 생보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난 건까지 지급한다면 배임 우려가 있다"며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만약 이날 대법원이 보험사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면 그간 거부 논거로 내세운 배임 우려가 해소되므로 '깔끔하게' 지급하는 것으로 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나, 반대 결과가 나오면서 계속 금감원 방침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승소 판결이 나온 만큼 해당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도 "이 판결이 관련된 모든 건에 적용될 수 있는지 등은 판결 내용을 확인해본 뒤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다른 생보사 관계자도 "이제 막 판결이 나온 만큼 내부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 많다"며 "금융당국과의 입장 정리 등이 껄끄러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보험 소비자들로부터 계속 쏟아질 따가운 눈총도 보험사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대법원의 판결은 생보사들이 알면서도 지급하지 않거나 설명조차 하지 않은 불법행위를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생보사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만큼 대국민 사과를 하고, 금융당국은 보험업법 위반과 소비자 기망행위에 엄중한 행정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이미 지급하기로 한 생보사들도 대법원이 정반대 판결을 내면서 처지가 난감해진 부분이 있다.

이들은 이미 대부분 지급을 완료한 상황이므로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방침을 거두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해 온 생보사의 관계자는 "이사회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고객 신뢰라는 차원에서 지급을 결정한 것이므로 이 방침이 바뀔 이유는 없으며, 배임 우려가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건도 대부분 지급을 완료했고, 아직 연락되지 않은 고객들의 보험금에 대해서는 공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