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되면 日롯데 지배력 커지고 한일롯데 연결고리 끊겨"

검찰이 26일 신동빈(61) 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청구하면서, 롯데가 창립 70년(일본 롯데 기준)만에 '총수 구속 수감'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위기에 놓였다.

그룹 임직원들은 "신 회장의 구속과 경영권 공백이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며 크게 술렁이면서도 28일께로 예상되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한 가닥 남은 희망을 거는 분위기다.

◇ "수사 최대한 협조했는데…기각에 한 가닥 희망"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회장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이날 오전 8시 30분께 출근해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소공동 롯데빌딩 26층 집무실에서 구속영장 청구 소식을 들었다.

이후 신 회장은 정책본부 법무팀, 홍보실 관계자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영장실질심사 준비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롯데 그룹 내부에서는 검찰이 아예 구속 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신 회장을 불구속 기소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남아있었다.

검찰이 지난 6월 10일 대대적 그룹 압수수색 이후 3개월 보름여 동안 무려 500명이 넘는 롯데 임직원들을 불러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자면 총수 신 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 확률이 더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는 요소, 불구속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요소를 갖고 심사숙고하고 있다", "경제적(측면), 검찰 수사 외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경청하는 단계" 등의 언급이 검찰로부터 흘러나오면서, 롯데는 불구속 기소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롯데 한 임원은 "미국과 일본 출장을 마치고 지난 7월 3일 이후 신 회장은 거의 모든 공식 일정을 뒤로 한 채 검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해왔다"며 "증거 인멸이나 도주 등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롯데는 향후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기각'을 위해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혐의 사실에 대해 최대한 소명할 예정이다.

특히 여러 혐의 내용 가운데 신 회장이 직접 지시하지 않았거나 관련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부분은 실질심사에서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 "구속되면…日롯데 지배력 커지고 M&A·기업공개 중단"
하지만 검찰이 이날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함께 "롯데 총수 일가의 이익 떼먹기 또는 이익 빼돌리기와 관련된 금액이 1천300억원인데, 이는 지금까지 재벌 비리 수사에서 적발된 가장 큰 금액"이라며 강한 어조로 롯데의 경영 행태를 비난했기 때문에, 법원도 구속영장을 기각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만약 신 회장의 구속영장이 실제로 발부될 경우, 롯데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한·일 롯데의 '원톱(one top)' 신 회장의 부재로 양국 롯데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는 점이다.

일본 경영 관례상 비리로 구속된 임원은 즉시 해임 절차를 밟기 때문에, 조만간 한·일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는 이사회와 주총을 열어 신 회장을 홀딩스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현재 신 회장과 홀딩스 공동 대표를 맡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의 단독 대표 체제가 가장 유력하다.

일본 홀딩스 임원과 주주들이 신 회장의 대표직을 바로 뺏지 않고 향후 한국 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기다려준다 해도, 당분간 일본인 전문경영인 중심의 비상 경영 체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신 씨 일가 가족회사 광윤사(고준샤·光潤社, 28.1%)와 신 씨 일가 개인 지분(약 10%)을 제외한 홀딩스 주식의 과반이 일본인 종업원·임원·관계사 소유인 상황에서 홀딩스 최고 경영진마저 일본인으로 바뀔 경우, 사실상 일본 롯데는 신 씨 롯데 오너 일가의 통제·관할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한국 롯데의 경영 공백도 심각한 상황이다.

그룹 2인자였던 고(故) 이인원 부회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이달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부회장의 뒤를 이을 후진 그룹인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도 모두 비자금 수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 사건 등으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검찰에 소환되는 처지다.

이에 따라 한국 롯데는 당분간 각 계열사 대표 중심의 경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빈 회장이 주도해온 인수·합병(M&A), 상장 등을 통한 그룹 성장 전략이 전면 중단된다는 점도 롯데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지난 6월 롯데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가 시작된 이후, 롯데케미칼은 미국 '액시올'사 인수를 포기하고 호텔롯데도 해외 면세점·호텔 인수 작업을 접는 등 최근 몇 년 동안 승승장구하던 롯데의 M&A 행진은 완전히 멈춰 섰다.

신 회장이 수감돼 경영상 주요 결정이 미뤄지면, 이런 '경영 위축'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적절한 시점과 과감한 결단이 승부를 가르는 M&A 경쟁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초 지난 6월 말 목표로 추진됐다가 검찰 수사와 함께 연기된 호텔롯데 상장 작업도 신 회장 구속시 사실상 '무산'이나 다름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호텔롯데 상장을 경영권 분쟁 이후 '롯데 개혁'의 제1 과제로 선정하고 밀어붙였던 신 회장이 구속과 처벌로 자리를 비울 경우, 한국 호텔롯데 지분 99%를 소유한 일본 홀딩스를 포함한 일본계 주주들이 자신들의 지분율과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장'을 재추진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롯데는 수조 원의 상장 공모 자금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일본 기업' 꼬리표도 뗄 수 없게 된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