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입만 바라보는 일본은행…"엔화 향방 美 금리결정에 달려"

일본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리관리 중심의 통화정책은 언뜻 생경해 보이지만 20세기 중반에 미국 당국이 시행했던 정책과 꽤나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은행이 장기금리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정책은 1940년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장기금리 페그제의 '데자뷔'(기시현상)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 보도했다.

연준은 1942년부터 1951년까지 장기금리에 2.55% 상한선을 뒀고, 1947년 7월까지는 단기금리에 대해서도 0.375%의 페그제를 적용했다.

이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참전을 위해 각국이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서방 채권시장에서 국채가 넘쳐흘렀기 때문에 취한 조처였다.

1948년까지만 하더라도 채권 금리가 매우 낮아서 연준이 굳이 개입하거나 상한선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지만, 1950년에는 한국 6·25전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단기금리가 오르고 장기금리도 상한선 이상으로 올랐다.

이 때문에 당시 연준은 채권시장에 개입해 직접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상한선을 맞춰야했다.

일본은행 역시 채권 매입규모를 조정하며 금리를 맞출 전망이다.

일본은행은 현재 국채, 상장지수펀드(ETF), 부동산투자신탁(REIT) 등을 사들이며 시중에 자금을 풀고 있지만, 이번에 장기금리 목표를 정하면서 단기적으로는 본원통화 확대 목표도 늘거나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일본은행이 약 반세기 만에 금리관리 방식의 통화정책을 선보였지만 엔화 환율은 일본은행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 등에 따르면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22일 달러당 100.10엔까지 떨어져 약 한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엔화 환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엔화 가치가 강세를 보였다는 의미다.

이는 밤새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2017∼2018년 예상 금리 인상 횟수를 축소하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앞선 지난 21일 일본은행이 새 통화정책 틀을 소개하자 엔화 환율도 달러당 102.79엔까지 뛰었다.

하지만 10여시간 뒤 연준의 통화정책 발표 직후 환율이 곤두박질쳤고 결과적으로 연준의 결정이 엔화의 움직임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당국의 입장에서는 경제 회복을 위해서 엔화 약세를 바라고 있지만, 엔화 가치는 연초 대비 15% 오르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연준이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적인 입장을 고수해온 데다가 6월 영국에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가결되면서 엔화 강세를 부추겼다.

엔화 가치가 계속 당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움직이면서 중앙은행이 장악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CNBC 방송은 "이미 일본은행은 엔화 환율 장악력을 잃었으며 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만이 (엔고현상으로 허덕이는) 일본 경제를 고칠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