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매일 쌓여가는 채무…이대로는 회생 어려워"
'600억원 지원' 논의 공회전…속 타는 대한항공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지난 3주간 회생과 청산 사이에서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는 한진해운이 조속한 지원과 물류대란 해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청산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역이 지체되면서 화물 운송지연 등에 따른 화주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본격화하면 손해배상채권이 1조원 단위에 이를 수 있고 미지급 용선료도 매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그룹이 약속한 600억원 지원 논의가 대한항공 이사회의 제동으로 공회전하면서 지원방안이 답보상태에 빠지면서 물류대란에 따른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 하역 늦어져 매일 210만달러씩 채무 불어…법원 "이러다간 회생 힘들어질 것"
한진해운 발 물류대란이 시작된 지 3주가 지난 가운데 법정관리 신청 초반까지도 회생에 무게를 뒀던 법원에서도 이대로 가다가는 회생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21일 법원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수석부장판사 김정만)는 지난 19일 오후 해양수산부, 산업은행, 부산항만공사, 한진해운 관계자 등을 불러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법원은 매일 불어나는 한진해운의 빚을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사실상 청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관리 신청 이후 한진해운의 미지급 용선료가 이미 400억원이 넘었다.

현재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화물의 가액은 약 140억달러(한화 약 15조6천억원)인데 하역이 지체되면서 화물을 제때 받지 못한 화주들이 한진해운에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 채권의 규모도 1조원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하역이 늦어지면서 선주들에게 선박을 돌려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될 용선료와 연료비 등이 매일 210만달러(한화 23억4천만원)씩 쌓여가고 있어 빚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

법정관리 신청 이후 현재까지 선주들에게 반환한 컨테이너선은 19척, 벌크선 18척으로 하역이 조금씩 재개되면서 반선되는 선박도 늘어가고 있지만 빚이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조속한 지원 없이는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에 신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법원과 해운업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돈은 있는데…" 600억원 지원할 방도 없어 속 타는 대한항공
한진해운에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대한항공은 이사회의 제동으로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만 거듭되는 가운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앞서 한진그룹은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 400억원과 대한항공을 통해 600억원을 추가 지원하는 등 1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조 회장은 금융기관에 ㈜한진과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마련한 400억원을 한진해운에 지원했으나 문제는 대한항공을 통해 지원하기로 한 600억원이다.

당초 대한항공 경영진은 한진해운이 보유한 롱비치터미널 지분을 담보로 잡고 600억원을 빌려주기로 하고 신속한 지원을 위해 먼저 600억원을 지원한 뒤 추후에 담보를 설정할 것을 이사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법적인 문제 등을 들어 경영진의 제안에 제동을 걸고 담보를 먼저 설정하는 조건으로 600억원 지원을 결의했다.

문제는 롱비치터미널을 담보로 잡으려면 한진해운이 이미 담보 대출을 받은 6개 해외 금융기관과 또 다른 대주주인 MSC(보유 지분 46%) 등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해운업계 모두 실현 가능성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휴 직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진해운 사태에 대해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노력이 매우 미흡했다"고 질타하는 등 대한항공에 대한 압박이 계속됐고 대한항공은 지난 8일부터 추석 연휴 마지막 날까지 4차례에 걸쳐 이사회를 소집해 장시간 논의를 거듭했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600억원 지원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대한항공 이사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수백억원의 거금을 지원했다가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 대한항공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고 결국 배임 등 법적 문제를 떠안게 될 수밖에 없어 확실한 담보 없이 선뜻 지원을 결의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한진그룹 고위관계자는 "사실 유보금이 있어 당장이라도 지원할 수 있지만 사외이사들이 자신들이 자칫 배임의 책임을 져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mong0716@yna.co.kr